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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Apr 25. 2023

불청객


우리 가게엔 불청객이 한 번씩 출몰한다. 


가게 주변에 프랜차이즈 샌드위치와 치킨, 햄버거 그리고 밥집들은 꽤 있으나 낮술을 먹을만한 메뉴로 낮부터 문을 여는 집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낮술을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 족발 가게로 종종 들어온다. 불청객들도 아마 가게를 물색하다가 대낮에 술을 마셔도 될만해 보이는 우리 집으로 유입되는 거 같다. 그들이 출몰하는 시간은 한가한 오후 시간이다. 주로 오후 1시에서 2시에 나타난다.


첫 번째 불청객은 노부부였다.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할아버지가 가게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영업합니까예?"


"네, 몇 분이세요?"


"둘인데요. 요 근처 볼 일이 있어서 자주 오는데 요기가 맛있다고 해서요."


"네, 편한 자리 앉으세요."


물통과 물수건 두 개를 먼저 가져다 드리고 반찬을 차려 드렸다. 노부부는 족발 소자와 참이슬 카스를 주문했다.


"우리 할매가 암인데. 술 마시면 안 되는데 오늘 검사 결과에 실망해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 하니까 할마시가 속이 너무 상한다고 소주 딱 한 잔만 묵고 싶다 캐서... 미안합니데이. 딱 한 잔만 묵고 갈께예."


"아, 네......"


나에게 미안할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나에게 미안하다고 다. 암이라는 얘기에 놀랐고 암환자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에 놀랐다.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눈동자는 의지도 희망도 없는 처럼 초점이 희미했. 떨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집었다. 소주도 찰랑이고 소주잔을 보는 눈동자도 찰랑이는 것 같았다.   

 

"크으으으......"


소주 한 잔도 이겨내지 못할 법한 체구로 단 번에 마셔버린 할머니는 낮게 신음했다. 난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내가 한 병을 단번에 다 마신 것처럼 인상이 구겨졌다.


주문한 족발을 가져다 드렸다. 이제 술은 그만 드세요.라고 말하는 상상만 여러  실제로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테이블에 할머니만 앉아계셨다. 난 가게밖으로 나가서 할아버지가 담배라도 태우시나 찾아보았다. 방금 내가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화장실에 있리는 없고 이상하다 싶었지만 오시겠지 하면서 다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테이블에서 일어나려고 탁자와 의자에 씩을 짚고 균형을 맞추려 애를 쓰며 비틀거렸다. 난 얼른 테이블로 갔다.


"화......장...실... 화...장..실...."


"화장실요? 제가 좀 잡아 드릴게요. 잠시만요. 근데 할아버지는요?"


"화...장...실... 나... 화장실..."


할머니를 부축해도 영 중심을 잡지 못했고 아무래도 다리가 문제인 듯했다. 다리가 안 그래도 가느다란데 술까지 취해서 제대로 서지를 못했다. 뭐 화장실을 간다고 해도 변기에 제대로 앉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어쩌지 어쩌지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즈음 갑자기 할머니의 몸에 힘이 풀리면서 축 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방귀소리와 함께 지독한 냄새가 났다. 바지 아랫단 할머니 신발 위로 누런 똥물이 줄줄 흘렀다.


"흐흐..흑.. 아... 하아...흐... 흐흑..."


할머니의 턱은 심하게 덜덜덜 떨렸는데 할머니는 울음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두 손은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다행히 곧 할아버지가 나타났어디서 왔는지 엠뷸런스도 왔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할머니를 엠뷸런스에 고 떠났다. 남겨진 는 바닥에 번진 오줌을 닦았다.


두 번째 불청객은 중년 남자였다. 그는 오후 2시경 출몰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요. 미안한데 술부터 주세요. 일행 오고 있는데 안주는 오면 시킬 께요."


"술은 뭘로 드릴까요?"


"소주 뭐 아무 거나 그... 참이슬 주세요. 참이슬."


"네."


장사를 하다 보면 촉이란 게 생긴다. 이 손님의 일행은 안 올 것이다. 그리고 음식도 안 시킬 것이다. 이 남자는 혼자 소주만 마실 것이다, 왜 그런 예감이 드는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에 입은 노스페이스 패딩과 맨발에 신은 삼선 슬리퍼의 언밸런스 매칭 때문일 수도 있다.  말투와 미세하지만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는 눈동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노숙자 몰골은 아니다.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도 있고 폰케이스엔 신용카드도 꽂혀 있다. 그리고 현금도 보였다. 일부러 보여주려고 올려놓은 듯이 폰케이스 덮개를 활짝 펼쳐두었다. 


딸처럼 보이는 여자와 분홍색 벚꽃나무 아래서 활짝 웃는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해두었다. 사진 속에 남자와 손님은 동일인인데 눈빛이 달라서인지 배경화면 속 남자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밝아보였다. 


난 냉장고에 소주 한 병을 꺼내 손님에게 주었다. 손님은 소주를 받자마자 한 잔을 들이켰다. 차려진 반찬은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젓가락을 수저통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소주 한 병 많이 마셔 봐야 두 병 까지껏 계산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무사히 가게에서 사라져 주기만을 바랐다.


난 그가 곧 깨질 병처럼 보였다. 깨진 건 내가 쓸어 담아야 할 번거롭고 귀찮은 숙제처럼 여겨졌다. 재수가 없으면 내가 혹은 누군가 치우다가 괜히 찔릴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의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장님 돈 벌었네. 돈 벌었어. 빨리 나와보세요."


족발에 막걸리를 드시던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날 불렀다. 난 그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왜요? 뭔 일 있어요?"


"저 사람 가게에서 혼자 마시던 사람 아닙니까?"


따뜻한 봄날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남자가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소변을 보다가 넘어졌는지 바지는 채 추스르지도 못했고 삼선 슬리퍼 하나는 신었고 하나는 길바닥에 뒤집어져 있었다. 패딩과 담배, 라이터는 그의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요. 저 사람 저기서 넘어진 게 천만다행이지 가게에서 넘어졌다고 허리 아프다고 하면 골치 아픕니데이. 사장님 오늘 운 좋다 돈 벌었네. 하하하하하!"


난 그 사람 쪽으로 걸었다. 그러자 손님은 날 불러 세웠다.


"사장님 어디 갑니까. 손대지 마이소. 나중에 딴소리하면 우짤라고 그냥 신고하세요. 저런 건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다. 쓰레기. 폐만 끼치는 쓰레기!"


난 신고를 했고 경찰에게 계산은 다 받았다고 했다. 아니 안주도 안 시킨 고작 소주 두 병값 애초에 받을 생각도 없었다.


세 번째 불청객도 혼자 온 중년 남자였다. 그는 오후 1시 30분경 출몰했다.


이 남자는 미안하다며 안주는 필요 없고 술만 시켜도 되냐고 했다.  술만 팔지 않는다고 안주를 시키셔야 한다고 했다. 그냥 나가주길 바라고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제일 싼 걸로 아무 거나 하나를 달라고 했다. 난 술부터 다. 그리고 안주는 만들지도 않았다. 그냥 촉으로 안주를 안 줘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방에 불조절을 하러 들어갔다가 나오니 그는 가고 없었다.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소주 한 병만 싹 비웠다. 테이블 위엔 천 원짜리 두 장과 오백 원짜리 하나 백 원짜리 둘 십 원짜리 두 개 총 2720원이 놓여 있었다.


러다가 이 불청객들의 정체를 알게 되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네, 족발집입니다."


"주문 좀 하려고 하는데요."


"네, 뭐가 궁금하세요."


"네 명이서 먹을 건데요. 여기가 맛있다고 그래서요. 근데 거기 술도 배달돼요?"


"네, 배달됩니다. 대신 술 받으실 때 전화 주신 분 신분증 제시해야 됩니다. 신분증 있으세요."


"네, 있어요."


이것저것 메뉴도 물어보면서 메뉴를 정했고 소주는 여섯 병이나 주문했다. 그런데 사실 자기가 지금 허리를 다쳐서 입원 중인데 몰래 먹는 거니까 술은 검은 봉지에 담아서 안 들키게 주면 안 되냐고 했다. 난 뭐 주문자의 요청사항을 들어주는 것일 뿐이니 그러겠다고 했다.


"근데 전화받으시는 분 제가 사실 허리가 아픈 게 아니고 신내림을 받은 사람인데요. 그걸 집에서 지금 인정을 하지 않아서 저를 병원에 입원을 시킨 겁니다. 막 신내림 받으면 영이 맑아서 엄청 잘 맞추는 거 아시죠?"


"네? 아... 네..."


"저랑 통화하시는 분은 진짜 대운이 올 겁니다. 내가 내 모든 걸 걸고 자신할 수가 있습니다. 두고 보세요. 아주 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제가 제 신분증 찍어서 보내드릴까요? 나중에 저한테 그때 그 말 다 맞았다고 고맙다고 저를 수소문해서 찾아오실 걸요."


"아이고 말씀이라도 고맙네요. 음식 잘 포장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 주소 이 병원으로 가서 도착 전에 전화하면 받으러 나온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제 말 꼭 기억하세요!"


그렇게 족발을 보내고 나니 아니 저 사람이 진짜 막 신내림을 받은 사람인가 싶으면서 나에게 대운이 온다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간간히 주문이 들어오는 병원이었는데 무심코 여겼다가 그 신내림 전화를 받고서 궁금해 포털사이트에 그 병원을 검색해 보았다. 


○○○○병원 밑으로 작은 글씨로 알코올전문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 가게 근처에 있는 그 병원은 알코올중독자들을 주로 치료하는 병원이었다. 그냥 ○○○○병원이라 되어 있어서 일반 병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때까지의 불청객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다 저 병원 환자들이었구나.

 

가게에 흔히 먹튀라고 하는 손님들은 불청객들 말고도 있었다. 난 그들은 다 신고했다. 테이블을 치우면 안 된다. 그대로 보존하고 신고를 하면 경찰이 지문을 채취한다. 그리고 CCTV에 얼굴이 찍히기 때문에 지문 조회를 하면 다 잡힌다고 보면 된다. 근데 웃긴 게 절도를 하다가 잡히면 합의 없이 처벌이지만 음식을 먹튀 하면 잡히고 계산하면 끝이다. 잡히면 내고 말면 좋고 가 된다는 말이다. 먹튀들이 하는 말은 다 똑같다.


"일행이 계산한 줄 알았다."


일반 먹튀 손님들은 술과 족발을 잔뜩 시켜서 아주 열심히 맛있게 먹어서 약이 올랐고 불청객 먹튀 손님들은 족발과 반찬은 손도 안 대고 깡소주만 마셔서 약이 안 올랐다. 약이 안 올라서인지 불청객 먹튀들은 한 번도 신고하지 않았다.


불청객들이 왜 그렇게 깡소주를 마시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 수없다. 하지만 나도 예전에 깡소주를 막 들이부었던 시절이 있었다.


헤어져서 힘들어서 그리워서 버거워서 다 잘못된 거 같아서


내가 그렇게 깡소주를 마셔댔을 때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난 불청객이었을 것이다. 술 처먹고 여기저기 전화로 쓸데없는 말도 많이 지껄였으니까.


불청객들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일 수도 있고 한 때는 잘 나가던 사람일 수도 있고 친절하고 명랑한 아이였을 수도 있다.


불청객들이 그냥 깡소주만 마시지 말고 족발이라도 신나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나도 약이 올라 신고를 할 것이 아닌가.


배고프다고 돈이 없다고 하면 난 밥은 차려줄 것이다. 술 고프다고 돈이 없다고 하면 난  술은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족발과 반찬은 손도 안 대고 깡소주만 마시다가 도망가는 불청객들을 앞으로도 신고는 못할 것 같다.


힘도 좀 냈으면 좋겠고 따뜻하게 잘 지내고 일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불청객이 아닌 반가운 손님으로 가게에서 다시 보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날이 오면 축하의 마음으로 서비스도 많이 챙겨주고 싶다.


불청객들 화이팅!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나면

하던 일이 하루 아침에 좋아지면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면

갑자기 큰 선고를 받으면


우리도 뜻하지 않게 불청객이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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