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고요하던 정막을 깨는 소리였다. 뭐 깊이 추리하지 않아도 되겠다. 손님이 잔을 깬 것이다. 난 그나마 콜라가 아니길 바라며 소리가 난 쪽으로 갔다.
저녁 피크 타임보다 이른 시간에 와서 족발에 소맥을 마시던 30대 초반 남자 두 명이 깨진 잔을 수습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렉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허리를 굽혔다 폈다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할게요. 제가"
잔을 깬 주범인 듯한 남자는 술에 취해 벌겋게 된 건지. 미안해서 벌겋게 된 건지. 아니면 두 가지 이유가 다 짬뽕이 되서인지. 짬뽕국물 같은 낯빛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런 젠장 깨진 잔엔 콜라가 담겨 있었다. 콜라가 바닥에 쏟아진 걸 밟고 다니거나 밀대걸레로 잘못 닦으면 온 가게가 찐득찐득해져 버린다. 물보다 훨씬 번거롭다. 하아 한숨이 났다.
"이야 잔 깨셨네요? 요새 가게 손님 없는데 잔 깨졌으니까. 잘하면 오늘 대박 날 수도 있겠는데요?"
순간 렉 걸린 남자 둘은 이게 뭔 소린가. 뇌에도 렉이 걸린 표정으로 날 보았다.
"요새 하도 손님이 없어가지고 잔이라도 하나 깨 볼까 안 그래도 그러고 있었는데 대신 깨 주셨네요. 으하하하!"
그제야 농담을 이해한 손님들은 안심한 듯 환하게 웃었다.
"아! 진짜요? 그러면 사장님 대신 내가 잘한 거네요?"
"네, 맞습니다. 많이 놀라셨지요. 콜라 다 버렸으니까. 제가 콜라 새 걸로 얼음 넣어서 시원하게 한 잔 가져다 드릴게요. 좀 추스르세요."
"아... 아닙니다. 제가 깨서 그런 건데 안 주셔도 됩니다."
"어? 콜라 안 드시면 대박 효과 안 나는데요. 장사에는 미신 같은 속설이 있어요. 모르셨죠? 잔 깨지면 대박난다. 깬 손님 서비스 드린다! 그러니 제발 드셔주세요. 나 좀 대박 나게. 으하하하."
"와아 사장님 그래 말해주시니까 진짜로 고맙습니데이."
얼음을 가득 담은 500cc 잔과 콜라를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고 조금 지나 손님 한 팀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나와 직원이 외치자. 잔을 깬 손님 테이블 남자 둘이 움찔하면서 들어오는 손님을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보았다.
"어서 오세요!"
남자 둘은 또 움찔했다.
"띵똥! 배달의 민족 주문! 띵똥! 배달의 민족 주문! 띵똥! 요기요! 띵똥! 쿠팡이츠 주문!"
남자 둘은 배달 주문이 들어올 때도 움찔움찔거리며 뭔가 신난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
손님이 자꾸 들어왔다. 잔을 깬 남자가 내 쪽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눈이 마주친 나도 씨익 웃었다. 난 아널드슈워제네거처럼 손님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잔깬남도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손님의 어깨에 뽕이 한컷 솟아있었다.
"사장님 오늘 잘 먹었습니다! 내 때문에 오늘 대박 나셨네요. 으하하하."
"뭐라카노. 다 내 덕이다. 내가 가는 데는 조용하다가도 늘 손님이 버글버글한다. 진짜라니까."
잔깬남 일행이 말했다.
"뭐라카노. 내 때문이다. 내가 깼다!"
"내 때문이라니까. 내가 복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다."
둘은 일단 술부터 좀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고 두 분 덕에 오늘 대박 났네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또 오셔서 잔 또 깹시다! 다음에 두 개 깨 주세요. 대박 두배로 나게요. 으하하하!"
손님 둘은 아널드슈워제네거처럼 아 윌 비 백. 사장님 또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비틀비틀 옆가게 인쌩맥주로 자취를 감추었다.
어차피 잔은 깨졌다
깨진 잔은 붙일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잘 깨진다
유리잔보다도 쉽게 깨질 수도 있다
말 한마디가 망치가 될 수도
끈끈한 접착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조금 짜증을 내거나
조금 말을 망치처럼 쿵쿵 쳤으면
그 손님과의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이
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로 마음을 붙이면
그 손님도 그리고 그 추억으로 인한
이 글을 읽은 구독자의 마음에도
작은 접착제 한통이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