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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Jun 28. 2023

병문안


할머니는 사람들과 나란히 누워서 밀린 방학일기 숙제를 하고 있다. 


눈을 감고


어릴 적 동네에서 뛰어놀던 일기를 쓸까. 밭에 가서 서리를 하던 일기를 쓸까. 냇가에물놀이하다 고무신 떠내려 보내고 혼났던 일기를 쓸까. 바가지 머리 펄럭이며 고무줄 던 일기를 쓸까.


다들 밀린 일기 쓰느라  병실은 독서실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내 방학은 얼마나 남았을까.


나도 언젠가는 나란히 누워 밀린 방학일기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이 오겠지.


누구에게나 방학은 끝나기 마련이니까.


막상 쓸 게 너무 많은데

막상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데

다 적지 못하고 다 전하지 못해서

아쉬워하지 않게. 안타까워하지 않게. 


미루지 말고 한 글자를 적고 한마디를 더 나누어야겠다.


"할매 손은 약손. 할매 손은 약손"


배탈 나면 따뜻한 손으로 둥글게 둥글게 내 배를 문질러 주었던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내 배와 내 손은 이렇게 커졌는데 할머니의 손은 아가손처럼 작고 힘이 없어졌다.


할머니의 배에 을 얹었다.


"손자 손은 약손. 손자 손은 약손"


할머니의 눈꺼풀이 어렴풋이 떨렸다.


"할매! 내가 문질렀으니까 이제 할매도 얼른 나아야 된데이."


난 알고 있다.


우리 할머니 일기장을 검사하는 분은 우리 할머니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쾅 찍어줄 거라는 것을. 그래서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개학을 맞이해도 할머니는 더 행복해질 거라는 것을.


바람은 그저 내 욕심일까 할머니가 너무 지쳐 보인다.


자주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방학은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누군가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

조금은 덜 아쉽고 싶어서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림 출처 네이버블로그 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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