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에 불이 났단다.
소방차 5대 응급차 3대가 출동했고 완전무장한 소방관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나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지직 103동 1602호다. 오버. 1602호. 지지직"
내 옆에 있던 소방관은 다급한 무전을 주고받았다. 난 무전기에서 들려온 103동 건물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103동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모두 아파트 건물 위쪽을 보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한 소방관이 다급하게 내려와 아파트 경비원에게 귓속말을 했다. 경비원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불났어요? 아니면 무슨 사고라도 난 겁니까?"
답답했던지 한 주민이 귓속말을 나누던 소방관과 경비원에게 크게 소리쳐 물었다. 경비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많은 주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와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랫집에서 불이 난 거 같다고 119에 신고를 해서 소방관이 가봤더니 그 아랫집에서 베란다에 모기향을 피워놨다네요."
3초간 정적이 흘렀다. 경비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라꼬요? 모기향요? 참내."
"아니, 모기향 냄새도 모르나?"
"에이, 이게 뭐고! 집에 가자 가자. 별 거 없네."
"난 또 뭐라고 에이."
"그러면 앞으로 119 출동할까 봐 무서워서 모기가 물어도 모기향도 못 피우고 그냥 모기한테 뜯기고 살아야겠네요. 호호호"
"더버 죽겠는데 소방관들 똥개 훈련 시키나!"
"이런 경우에는 출동비 청구해야 되는 거 아니가!"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렀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사람들과 웃다가 집으로 걸어갔다. 난 철수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이상한 의문점이 생겼다.
난 왜 내심 활활 타오르는 불을 기대했을까. 왜 한편으론 뭔가가 일어나길 기대했던 걸까.
나는 내 집이 아닌 걸 알고 안심하면서 왜 남의 집이 활활 불타오르는 것은 구경하고 싶어 했을까.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왜 머릿속에 그린 걸까.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말은 과연 왜 생기게 된 걸까?
사람들의 마음속엔 악마가 살고 있나? 내 안에 악마가 살고 있나?
난 오늘 화마는 못 보았지만 내 안의 악마는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