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사람들과 나란히 누워서 밀린 방학일기 숙제를 하고 있다.
눈을 감고
어릴 적 동네에서 뛰어놀던 일기를 쓸까. 밭에 가서 서리를 하던 일기를 쓸까. 냇가에서 물놀이하다 고무신 떠내려 보내고 혼났던 일기를 쓸까. 바가지 머리 펄럭이며 고무줄 뛰던 일기를 쓸까.
다들 밀린 일기 쓰느라 바쁜지 병실은 독서실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내 방학은 얼마나 남았을까.
나도 언젠가는 나란히 누워 밀린 방학일기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이 오겠지.
누구에게나 방학은 끝나기 마련이니까.
막상 쓸 게 너무 많은데
막상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데
다 적지 못하고 다 전하지 못해서
아쉬워하지 않게. 안타까워하지 않게.
미루지 말고 한 글자를 더 적고 한마디를 더 나누어야겠다.
"할매 손은 약손. 할매 손은 약손"
배탈 나면 따뜻한 손으로 둥글게 둥글게 내 배를 문질러 주었던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내 배와 내 손은 이렇게 커졌는데 할머니의 손은 아가손처럼 작고 힘이 없어졌다.
할머니의 배에 손을 얹었다.
"손자 손은 약손. 손자 손은 약손"
할머니의 눈꺼풀이 어렴풋이 떨렸다.
"할매! 내가 배 문질렀으니까 이제 할매도 얼른 나아야 된데이."
난 알고 있다.
우리 할머니 일기장을 검사하는 분은 우리 할머니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쾅 찍어줄 거라는 것을. 그래서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개학을 맞이해도 할머니는 더 행복해질 거라는 것을.
내 바람은 그저 내 욕심일까 할머니가 너무 지쳐 보인다.
자주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방학은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누군가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덜 아쉽고 싶어서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림 출처 네이버블로그 임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