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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펜타포트, 기억에 남는 순간?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게되는 무대.

by 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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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덕의 명절, 펜타포트가 끝난지 1주일이 더 지났다. 잠시 현실을 잊고 미친듯이 놀기에는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 3일. 락 페스티벌을 다녀오면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공연들을 뽑는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순간의 무대도 있다. 그게 최고의 공연과 맞아 떨어지기도 하지만, 반드시 같으리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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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작년 펜타포트에는 Turnstile, Jack white 등의 강렬했던 무대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 곱씹게되는 순간은 세이수미의 무대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자 (Let's don't say anything)'을 부를 때, 서클핏 안에서 춤을 추던 순간이었다. 친구가 찍어준 영상 속의 나는 너무 즐겁게 손발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가끔 그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이번 펜타포트도 최고라고 생각했던 무대들이 있었고 10일이 지난 지금, 계속 생각이 나는 순간들이 있다.


최고의 무대 : 헤드라이너 3인방

올해의 운영은 결코 20주년에 미치지 못했지만, 헤드라이너만큼은 20주년이었다. 헤드라이너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노래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미치게 만들고 입을 떡 벌리게 하는 뮤지션. 그게 헤드라이너다.


1. Asian kungfu generation (이하 '아지캉')


2007년 이후 첫 펜타포트, 12년 만에 내한, 나루토, 강철의 연금술사, 블리치... 90년대생 남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명 OST들.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아지캉은 너무나도 필요 이상이었다. 목청 터져라 따라부른 Rewrite, Re: Re:, After dark... 개인적으로 See you again tomorrow가 너무 듣고 싶었지만 뭐 어떤가, 난 아지캉을 봤다.



2. PULP (이하 '펄프')


90년대 영국을 휘어잡은 밴드 중의 하나.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중학생의 나는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뮤즈, 스웨이드, 킨 등 수많은 영국 밴드들을 디깅했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펄프를 거쳐갔으나 기억 속의 나는 펄프를 그렇게 즐겨 듣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슬램존에서 한 발짝 떨어져 펄프를 사랑하는 덕후분들과 섞여 춤추며 'Common People'을 열창했다. 난 펄프를 좋아했다.

40년이 넘은 밴드의 관록은 어마무시했다.




3. Beck

그가 무대를 채우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우비를 챙겨 입었고, 누군가는 비를 피해 무대를 잠시 떠났으며, 우리같은 정신나간 애들은 신난다고 있는 힘껏 비를 맞았다. 알코올이던 뭐던 빗 속에 뭐가 섞여있었나보다. 사람들은 잔뜩 취한 것처럼 리듬을 타고 소리쳤다. 그렇게 춤을 춰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모두가 그랬으니까.




곱씹게 되는 최고의 순간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따로 있듯이 기억을 더듬으며 계속 찾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최고의 무대들이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면, 내 기억 속 스테디셀러인 순간들은 은은한 행복함을 전달한다.


1. 눈앞에서 마주한 김뜻돌의 크라우드 서핑


내 예상보다 입장이 너무 오래걸려 공연장에 늦게 들어갔다. 입장하니 이미 김뜻돌의 무대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자면 가장 듣고 싶었던 '속세탈출'이 마지막 곡이었다는건데, 그걸 위안삼으며 뒤편에서 감상을 시작했다. 그래도 첫 째날 가장 보고싶던 아티스트중 한 명인데 이렇게라도 보는게 어디냐. 그런데 왠걸 마지막에 김뜻돌이 관객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게 아닌가. 내 코앞에서 멈춘 김뜻돌은 팬스를 넘어 크라우드 서핑을 시전했다. 그게 올해 펜타포트의 짜릿한 첫 인상이었다.



2. 이승윤의 '역성'


3일 중에 울컥했던 순간이 딱 두 번 있었다. 그 중의 한 번이 이승윤의 '역성'. 이승윤의 무대를 여러번 봤지만 그 때마다 전달 받는 에너지에는 타 무대와는 조금 다른 벅찬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다른 뮤지션은 몰라도 이번엔 이승윤의 깃발을 꼭 들고 싶었다. 그래서 들었다. 깃발을 휘두르며 '역성'을 있는 힘껏 소리치며 따라 불렀을 때, 가슴 한켠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나왔다. 이승윤은 내 최고의 락스타중 한 명이다.





3. 스모크 핫 커피 리필


두 번째 울컥했던 순간. 3호선 버터플라이를, 그것도 성기완까지 합류한 3호선 버터플라이를 한 순간도 안 놓치려고 뛰어갔다. 무대 가까이에 자리잡고 공연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남상아가 '스모크 핫 커피 리필'을 읊조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허구한 날 돌아다니던 홍대의 라이브 카페, 펍, 라이브 클럽 데이가 열리면 열심히 타임테이블을 쳐다보며 돌아다니던 대학생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한시간동안 2014년에 머물러 있었다.





힘들지만 행복했던 3일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중에서 또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이 걸러질 것이다. 그 순간을 계속 곱씹으며 기다리다 내년 펜타포트를 마주하면 또 감회가 새로울거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내년에는 3일 내내 뛰어다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너무 힘들다. 해가 지날수록 몸이 예전같지가 않다는게 느껴진다. 운동은 꾸준히 하는데 왜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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