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세모] 2022년 08월호
2019.07.21
난 이날 오고 갔던 길이 생각나. 브라이튼 역에 도착했을 때 갈매기가 엄청 많았잖아. 여기 가는 길은 꼭 윈도우 기본 배경 화면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웠어. 내려서 좀 걸었는데 웃긴 소리로 우는 염소들 만나서 빵 터졌던 거 기억나? 도착했을 때 사람이 진짜 많았는데 그들 사이에 돗자리로 쓰려고 가져갔던 식탁보를 펼쳐놓고 누워있던 것도 좋았지! 눈부시고 뜨거웠는데도 평화로워서 좋더라. 그리고 우리 배고파서 주변에 있던 빵집(?)에 가서 이것저것 먹고, 바다에 발도 담가보고 버스 기다리면서 온갖 게임했잖아. 우리 진짜 별거 다 하면서 놀았는데 난 이때 우리끼리 되게 잘 논다고 생각했어. 여기 진짜 평화로웠는데 넌 어땠어?
맞아 맞아. 삑소리 내면서 ‘에에에~’ 우는 엄청 웃긴 염소가 있었지. 염소마다 울음소리가 다른 게 신기했어. 그 염소들 잘살고 있으려나? 나도 오가는 길 생각이 많이 나. 뉴욕에서 세븐시스터즈 가는 버스 티켓이 특이했던 거 기억나? 달력같이 숫자가 적혀있고, 해당 날짜를 복권처럼 동전을 긁어 표시하는 방식이었잖아. 잘못 긁으면 티켓을 다시 사야 해서 날짜를 몇 번이고 확인했었지. 번거롭긴 했지만 재미있는 방식이었어. 버스에 내려서는 풀길 옆을 꽤 걸었던 게 생각나는데, 날은 더웠지만 싱그럽고 푸르른 풍경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 그런데 사실 나는 이날 기분이 좀 안 좋았어… 왜 안 좋았는지는 일기장에 일부러 적지 않아서 이제는 더 이상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적어두지 않길 잘한 것 같아! 덕분에 좋았던 기억들만 남았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내 감정이 티가 많이 안 났나 보다!
윈도우 기본 배경, 완전 완벽한 비유야. 와. 너희들의 기억력에 첫판부터 감탄 중이야. 나는 웃긴 소리로 우는 염소들도, 독특한 방식의 티켓 모두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덕분에 기억이 났어. 이날 우리는 계속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어. 이모, 저모, 나 모두 탑모델에 빙의 되어 다채로운 포즈를 보여주었어. 딱 인생샷이다!! 하는 건 사실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렴 어때!! 촬영 과정에서 너희들과 깔깔 웃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2019.07.25
햄리스 백화점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 내가 해리포터 덕후라서 그런지 여기 지하의 해리포터 굿즈들에 눈 돌아갔잖니. 아마 너네 없었으면 몽땅 사서 첫 번째 나라에서부터 파산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직원분이 플라즈마 볼 만지면서 내 코를 만졌더니 전기가 통했던 기억이 나. 직원분들이 일하는 건데 즐거워 보여서 나까지 덩달아 신나는 공간이었어. 맞다! 이날 내가 계산 때문에 쭈뼛거리는 사이에 밖에 나왔더니 노을이 지려고 했잖아. 우리 이날 프림로즈 힐에서 노을 보기로 했는데… 정말 미안하고 아쉬웠어. 그래도 여기 야경까지 예뻤지? 넌 어땠어?
그랬었어?! 나는 내가 장난감을 한참 동안 구경해서 늦어진 줄 알고 미안해했는데! 우리 서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장난감과 해리포터 덕후들에게 천국이었어. 여기서 해리포터 실링 왁스를 살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내려놓은 게 생각나. 다행히 미련은 없어! 나는 여기서 너희들에게 줄 선물을 몰래 사느라 나 혼자 영화 한 편 찍었잖아~ 너희들을 따돌리고, 고른 물건을 숨기고, 혼자 계산하러 가기 위해 연기 좀 했어. 눈치 못 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너희들이 선물을 좋아해 줘서 무척 기쁘고 뿌듯했어.
이모가 여러 장난감을 만져보며 세 번씩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나. 그녀의 경제 관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고? 나였다면 일단 결제하고 봤을 거거든. 나는 동심이 별로 없는 편이었을까? 장난감이 막 끌리지는 않았지만 구경하는 건 매우 재미있었어. 이모가 계산할 때 내가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저모가 계산할 땐 내가 옆에 없었어서 저모가 우리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었어. 저모의 명품 연기 칭찬해!
2019.07.27
유럽에서 처음 하는 게 진짜 많았는데 호텔에서 룸서비스 시켜본 것도 여기가 처음이었어. (노보텔이긴 했는데 시설이 좋았지) 아예 이 호텔에 있을 땐 릴렉스 데이로 방에서 뒹굴뒹굴했잖아. 장기 여행이라서 따로 뺀 시간이었는데 진짜 좋았어. 먼지가 좀 있었다는 것 빼곤 다 천국. 음식 맛은…. 저 파스타가 푸석거렸어. 암튼 네덜란드에서 셜록 봤는데 그때 너도 같이 봤나? 난 영국에서 셜록홈즈 뮤지엄 다녀온 후에 봐서 그런지 더 몰입할 수 있었어. 물론 어디에서 봐도 재밌겠지만! 이날 우리 셋이 침대 두 개 붙여서 잠들었던 기억이 나. 수다도 떨고 재밌었지! 낮잠도 자고~ 참! 네가 사 왔던 요거트랑 체리랑 처음 먹어보는 납작 복숭아도 너무 맛있었어!!! 고마워!!
이때 사정이 있어서 나 혼자 숙소를 따로 썼었잖아. 내가 머문 호스텔이 정말 미치도록 더워서 방금 씻고 나왔는데도 땀이 주룩주룩 났었어. 어찌나 힘들었는지 나 진짜 진심으로 노르웨이로 돌아갈까 생각했었다…? (당시 유럽 여행 후 노르웨이로 교환학생 가는 일정) 근데 밖에 나오니 오히려 바람 불고 시원했던 거 있지! 그날 현지인처럼 숙소 주변 동네를 둘러보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 아무튼 더위로 너무 고생해서 다음날 너희 호텔로 피신하러 갔었지. 가는 길에 장이 열려있었는데 구경하며 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어. 가는 길에 마침 궁금했던 납작 복숭아와 체리가 있어서 사 갔지. 역시 에어컨은 천국이더라… 침대 두 개를 붙여서 좁고 불편했을 수도 있는데 흔쾌히 너희 호텔에서 자고 가라고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셋이 깔깔거리며 잘 쉴 수 있었어.
매우 단순하게 ‘편하다’, ‘맛있다’,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으니 더 맛있다’ 이런 생각이 하루 종일 나를 지배했었어. 너희랑 침대에 늘어져 영상을 보면서 하하호호 거리는 것이 분명 즐거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에는 ‘그래도 여행을 왔는데 뭔가 지하철을 타고 나가 걸어 다녀야 하는 걸까?’ 하는 타지로 여행을 왔으니 일명 ‘뽕을 뽑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
2019.07.30
바로 이곳이 내가 상상했던 네덜란드 그 자체였어. 내가 상상했던 네덜란드는 이런 풍차가 있고 물과 녹색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곳이었는데 네덜란드 중심에서 독한 냄새 맡고 실망했잖아. 예쁜 눈망울의 소도 보고(자기 예뻐해 주는 거 알고 손 내밀면 쓰담 받으러 왔던 기억나) 평소에 치즈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인생 치즈도 발견해서 좋았어. 여기서 처음 스트룹 와플 먹고 ‘이거 사 가야겠다!’ 결심했던 기억도 나. 우리 여기 오는 길에 카카오 냄새 맡았잖아. 물론 난 카카오 냄새를 모르지만 그런 냄새가 날 것 같았어. 카카오라고 추측되는 향은 초콜릿과 다르게 좋지 않아서 우리끼리 인상 찌푸렸던 기억이 나. 여기로 넘어오는 다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신기했어! 아 참, 나 오리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어. 아이스크림에 전투적으로 달려드는 오리. 처음으로 오리가 무섭게 느껴졌었어.
맞아! 네 말 그대로 내가 상상하던 네덜란드 그 자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그곳에 앉아 온종일 풍경만 바라보고 싶었어.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 주황빛 건물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일상들, 이를테면 풍차가 돌아가고, 오리가 헤엄치고, 송아지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장면을 그림에 담고 싶었어. 네덜란드에서는 유독 냄새로 고통받은 기억이 많은데, 잔세스칸스도 피해 갈 수 없었지. 오가는 길에 났던 그 카카오 냄새… 냄새가 너무 심해서 나중에는 머리가 다 아팠어. 참! 이곳에서 미피 인형 가게를 들렀었는데, 그때 본 뜨개질로 만든 미피 인형이 아른거려.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 미피 인형을 데려올 거야!
정말이지 여행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은 여행을 가는 것만큼 흥미롭고 신기한 것 같아. 나는 이모와 저모, 너희들이 말해준 내용들이 생생히 떠오르지 않아서 덕분에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지금 맞춰보는 느낌이 들어. 나는 잔세스칸스에 가는 길이 더 기억에 남아. 우리는 기차를 탔어. 좌석 시트가 한국의 무궁화호의 파란색 좌석 시트와 유사했어. 기차에서 나는 다소 뜬금없지만 바나나를 먹은 기억이 있어. 하차 후 우리는 계속 직진했고 움직이는 대교를 건넜어. 대교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풍차에 우리는 매우 설레했어. 네덜란드는 풍차가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
2019.08.04
나 이때 탔던 케이블카가 좀 무서웠어. 다 뚫려있었잖아?? 사실 떨어져도 죽겠다 싶은 높이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아. 아예 까마득하게 높으면 실감이 안 나서 더 괜찮았을 텐데 말이지. 아무튼 오갈 때 함께 타 줘서 고마워. 이날 마셨던 아이스 와인이랑 앉아있었던 독특한 의자가 기억나. 아이스 와인도 처음 마셔봤던 것 같은데 너무 맛있었어. 아이스 와인 러버됐어!!! 의자에서 실없는 얘기 하면서 또 시시덕거리는 게 재밌었지! 맞다, 여기에서 기차 기다릴 때 괴로웠어… 사람 냄새가...이럴 수 있는 건가...? 아니, 이래도...되는 건가...?
나는 사실 아직도 뤼데스하임이랑 하이델베르크가 헷갈린다…? 두 곳에서의 기억이 짬뽕 되어 어느 게 어디서의 기억인지 헷갈려. 아무튼 일기에 따르면 이날 오르골 가게에 갔었네! 원래 오르골에 크게 관심 없는데 훗날 오르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 여행이 떠오를 것 같아서 샀었지. 오르골을 좋아하는 너는 생일 축하 노래가 나오는 쇼핑백 모양 오르골을 샀었잖아. 사놓고 안 듣는 나와 달리 매년 생일 때마다 그때 산 오르골을 듣는 것 같아서 대리 뿌듯해. 아이스와인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지! 하지만 나는 한입 맛만 보고 너희에게 줘야 했지… 이럴 때면 술 못 마시는 게 너무 슬프다니까.
맞아. 저 날 케이블카를 탔었어. 나는 혼자 탑승했었지. 덕분에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 풍경을 주의 깊고 보고 자연의 소리와 덜컹거리는 케이블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어. 나도 이모와 함께 생일 축하 노래가 나오는 오르골을 샀는데, 가끔 들으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껴. 그만큼 그립다는 거겠지? 내 기억 속 뤼데스하임은 독일 시골 마을의 느낌이 가득했기에 괜스레 전통 복장을 하고 골목을 뛰어다니고 싶었어. 그리고 한 번의 방문으로도 이곳을 모두 간파하였다는 기분이 들어 다음에는 또 다른 특색있는 마을을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했어. 나랑 또 가자.
2019.08.06
여기 너무 좋았어. 사실 이렇게 커다란 물줄기가 있을 줄 몰랐어. 심지어 사람들은 여기서 튜브 타고 놀았잖아. 우리로 따지면 계곡 같은 곳이려나? 암튼 정말 넓었지. 꽤 많이 걸어 다녔던 것 같은데 여기서 만난 커다란 골든레트리버가 기억나. 물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와서 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건 물에 인공 파도(?)를 만들어서 서핑하던 사람들. 진짜 신기했어. 물에 발만 담갔지만 정말 시원하고 좋았지. 유럽 공원들 너무 좋아. 그대로 한국에 가져오고 싶을 정도야ㅠㅠ
이곳은 독일인데 이름은 영국정원이라 기억에 남아. 청록빛 물빛이 인상적이었지. 일기에 따르면 공원에서 서핑한다는 말에 큰 흥미를 느껴 영국정원을 찾아갔대. 서핑하는 곳은 물의 흐름과 방향을 조절해둔 것이 마치 에버랜드의 아마존 익스프레스 같았어. 도심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놀랍고 부러워! 유럽은 곳곳에 자연을 느끼고 쉴 수 있는 정원이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아. 내가 만약 여기에 살았다면 이 공원에 매일 왔을 거야. 그랬다면 나도 여기서 서핑 하고 있었을까?
아무 돗자리 깔고 앉아서 하루 종일 수다 떨고 도시락도 먹다가 나른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면 낮잠도 자고, 그러다가 또 일어나서 책 읽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다 활동적이고 싶으면 서핑도 하고. 한 공간 안에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자연 속 멀티 플렉스 공간이 아닐까 싶었어. 유럽은 한국과 달리 곳곳에 쉴 수 있는 자연 공간이 많다는 점에서 인상 깊어. 한국도 물론 한강, 서울숲, 석촌호수 등 유사한 도심 속 자연이 있지만 둘은 느낌이 완전 다른 것 같아. 전자는 느릿하고 여유로운 반면, 후자는 어딘가 분주한 여유로움이었달까. 아무튼 나도 이모의 마음처럼, 유럽 공원들이 매우 좋아서 한국에 그대로 뿌리 뽑아 가져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모처럼 저곳에 살았다면 공원 지박령인 마냥 매일 와서 있었을 거야. 너희들과 함께 영국, 독일,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매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여행 당시뿐만 아니라 여행이 종결되고 나서도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여운을 남기며 부단히 긍정적 작용을 주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나의 내적 성장으로 귀결되고 있어. 나의 이런 성장 스토리에, 이모와 저모 너희들이 함께 해줘서 매우 영광이야. 갑자기 분위기 고백이네. 아무튼 우리의 여행 스토리, 2019년 유럽에서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그려 나가 보자.
해당 게시글은 2022년에 쓰인 글로,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게시글을 브런치에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2023년은 홀수 해를 맞이해 홀수달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