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달았지만 내뱉기조차 괴롭다.
점점 내 안에서 외부의 여러 가지 상황과 요구로 압박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조금씩 힘들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상황 인지에 더해 그 상황이 바뀔 조짐도 없고 지속되어 가면 미세하게 일상생활에 균열이 생긴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질문이나 요구에 응대는 하나 말 그대로 영혼이 담기지 않고 그저 대답만 하던가 그저 해달라는 대로 해주기 바빴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도 그 힘든 상황에 대한 생각만 계속 맴돌고 어떻게 벗어나는지만 고민하게 된다. 어쩌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 힘든 상황을 토로하기도 하나 열심히 내 이야기를 들은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조언도 잘 귀담아듣지 못한다. 분명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에게 알아달라고, 나 좀 도와달라고 이야기한 것인데도 상대방의 조언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냥 무턱대로 벗어나라! 그만둬라! 한다든가 아무런 대안 없이 너는 할 수 있다는 식의 희망고문이 대다수이다. 물론 조언하는 사람이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하는 조언일 수도 있지만 대개 나는 그에게 나의 이 힘든 상황을 전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스스로 안다. 판단과 결정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생긴 이 힘든 일은 결국 버티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 힘든 일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나의 안일한 사고방식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힘들 거란걸 스스로 알면서도 외면하며 지내다 맞닥뜨렸다는 것을. 자책도 자책이지만 버티기로 한 이상 일상 내내 마음에 무거운 추가 밑바닥으로 나를 당기고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넘기고 넘기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다 결국 전혀 상관없는 지점에서 폭발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내내 여유 있는 시간 동안 미루고 미루다 손댄 집안 정리를 드디어 하며 힘에 부친 상태인데 아이들은 방학 끝에 갑자기 아팠다. 고열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둘째가 내내 걸려서 스스로 미칠 거 같은 지경에 이르러 갑자기 상황이 꼬여 펑 터져버렸다. 너무 힘이 들어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남편의 귀가시간 동안 이미 꼬인 상황은 와도 수습이 안될 지경에 다다랐다.
그때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정리하면서 버린다고 내놓은 짐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남편의 한숨은 나의 트리거가 되었다. 제어할 수 없이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황당하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엉엉 울면서 정말 말도 하기 싫다는 게 이런 거란 걸 느꼈다. 그냥 밖에 꺼내기조차 힘든 나의 감정이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일로 내 밖으로 나와버렸는데 그에 대해 해명이나 변명도 하기 싫고 수습하기도 버거웠다. 지치고 메말라 펑펑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한 게 아니라 다 귀찮아졌다. 정리하던 물건이 집안 여기저기 쌓여있는데 더 이상 건드리기조차 싫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묘수나 신박한 방법을 찾는 게 아니다. 누군가 나의 이 상황을 구원해 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 지금 이것을 버티고 감당할 힘이 필요하다. 괴로운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티를 내고 싶지도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저수지 바닥의 침전물처럼 고요히 가라앉혀 그저 일상이 흙탕물이 되지 않도록 그저 침묵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뱉기조차 어려운 힘듬에 대해 설명하는 것 그 자체가 괴로움일 때가 있다. 그럴 땐 그저 둬야 한다. 정리하다 멈춰 여기저기 놓인 물건들처럼.. 때론 그것도 방법일 때가 있다. 어떤 것들은 그저 빠른 해결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조금 추스리면 정돈이 될 거다. 그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