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목련, 나의 가장 마음 가는 봄

벚꽃, 산수유 그러나 목련

by 나무가조아

경칩은 벌써 2주 전에 지났다. 봄을 알리는 징조들은 이미 우리 주변을 조금씩 채우고 있다. 반갑지 않은 황사와 먼지를 머금은 봄비는 지나간 자리에 자국을 남겨 모처럼 입은 화사한 봄옷이 더러워질까 봐 새삼 옷을 살피게 한다. 30대까지는 봄이 싫었다. 아니 그저 그랬다. 마음속에는 늘 그래봤자 봄, 겨울지나 봄이었지 새삼 무엇이 새롭냐였었다. 겨울이 지겹고 우울하게 길고 긴 끝이어서 봄이 와도 너무 지쳐 그저 봄이다 싶었지 그 이상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봄이었던 거 같다. 당시 살고 있던 우리 집 아파트 1층 입구 오른쪽에는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목련 한 그루가 홀로 활짝 피어있었다. 집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그 목련 나무가 눈에 고이게 되었다. 어릴 때 나는 목련이 질 때 참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두꺼운 그 하얀 꽃잎이 지고 나면 바닥에 짓이겨져 갈색으로 탁하게 변해서 보기 안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나 마나 했던 목련이 이상하게 그 날 이후로 마음이 갔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마음 한구석에 봄이 오면 목련이 생각난다.


한번 눈에 들어오니 오며 가며 그 목련 나무를 계속 보게 되었다. 아니 이제는 봄이 되면 지나가는 길에 목련 나무는 다 보이기 시작한다. 운전하다 길가에 핀 목련을 보면 여기도 목련이 있구나. 저기도 있네.. 하나둘 목련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길에 목련 한그루라도 피어난 곳을 보면 아는 길도 아닌데 반갑고 흐뭇하다. 그러다가 봄이 진해질 때쯤, 정확히는 벚꽃이 시작되기 바로 전 하나 둘 꽃잎이 바닥에 떨어진다. 오며 가며 하나 둘 떨어지더니 우수수 떨어진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곤 한다. 아깝고 안타까워서 혼자서 안절부절하게 된다. 아직 갈색으로 진하게 얼룩이 지지 않은 하얀 꽃잎 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차도에 놓여있기라도 하면 마음이 아프기까지 한다. 밟혀서 다 곤죽이 되거나 봄비에 지저분하게 길가 배수로를 막은 목련꽃잎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 목련꽃이 모두 지고 나면 벚꽃으로 세상은 정신이 없게 된다. 눈 돌리는 곳마다 한가득 벚꽃으로 가득 차서 자기가 여왕이고 봄이라고 부르짖는다. 물론 그러다 뜬금없는 저 구석 외진 곳에 그야말로 늦은 목련이 생뚱맞게 피어있기도 하고 꽃잎을 덜 떨어트린 목련이 황급히 꽃잎을 떨구고 있기도 하다. 작년에는 남편과 둘레길 벚꽃을 보러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혼자 덩그러니 반쯤 진 목련을 보고 그 추레함에 화들짝 놀라 황망하게 외면한 적이 있다. 벚꽃을 보러 나와서 만난 목련에게 보고도 못 볼걸 본 것 같은 민망함과 미안함을 느끼며 걸어가는 내내 눈을 못 떼고 왜 이제야 지는 거니 하고 쳐다보았다.


목련은 벚꽃의 화려한 세상을 모른다. 그저 봄이 와서, 봄이라서 꽃을 피운다. 백목련은 봉우리가 무럭무럭 커지면서 풍선처럼 부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하고 하얗게 꽃잎을 피워내고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적목련도 보랏빛 붉은 치마로 세상 화려하게 핀다. 목련 꽃잎은 자잘하고 비칠 만큼 얇은 겹속치마 같은 벚꽃잎에 비해 한국 고전 영화에 나올법한 두툼한 광목 치마 같이 투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성미도 급해서 다른 봄꽃들이랑 함께 피워서 좀 같이 이쁨 받고 지내다가지 뭐가 급한지 혼자 후딱 피워버리고 지천이 꽃인 세상이 되기 전에 무겁다는 듯이 치마를 벗어던져 버린다.


그래서 목련이 필 때쯤 나는 태안에 천리포 수목원에 간다. 그 수목원에는 다양한 목련이 함께 있다. 도시의 목련은 군락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길가에 두어 그루 눈에 띄지만 이곳에는 제법 많은 목련이 함께 있다. 그래서 이곳의 목련은 다들 함께여서 안심이 된다.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르지만 작은 아이 유치원 때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초등학교 때도 해마다 찍었으니 나에게는 봄 행사처럼 가게 되는 곳이다. 혼자 간 적도 있고 가족과 간 적도 있다. 물론 가을에 간 적도 있지만 대개는 봄에 가게 된다. 오래된 친구 만나듯이 그저 목련을 만나러 간다. 목련꽃이 핀 수목원 길을 걸으며 시작된 올해의 봄을 마음으로 몸으로 받아들인다. 예전엔 못 보던 목련차를 수목원 카페에서 메뉴로 봤을 때는 정말 나도 모르게 너무 기뻐서 커피로 길들여져 내겐 너무 은은한 그 차를 감격에 차 마셨었다.


나는 참 많이 우울했다. 지금은 그 우울함과 사귀어 이제는 우울해도 받아들이고 체념할 것은 하고 걷어낼 것은 걷어내고 산다. 살아가는 법은 40대가 돼도 배운다. 나도 모든 게 전부 처음이다. 나이 먹는 내 인생에는 두 번째가 없는데, 인생은 모두 그렇게 한번뿐인데 목련은 매년 새로운 회차로 거듭나서 그 자리에 꽃을 피워낸다. 아니다. 목련에게 사과해야겠다. 목련도 매년 새롭게 꽃을 피운다. 아둔하고 미련하게 그리고 떨어져서 지저분하게 될 것이 뻔한대도 손에 담기지도 않게 커다랗고 큼직하게 꽃을 피워낸다. 그럼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서 또 혀를 쯧쯧 찬다. 미친 여자처럼 성미 급한 그 여자가 어딘가 나를 닮았다고 혼자 느끼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련은 남도에서부터 올해도 시작이 되었다.

지난겨울이 너무 길고 새로 옮긴 직장이 고달파 올해는 잠시 잊고 있었던 이름, 목련. 그렇게 우직하고 미련하고 멋 낼 줄 모르는 우아함. 목련의 꽃말 우아함을 만나러 다녀와야겠다. 그래야 또 그 아이들을 보고 나도 올해가 안심이 될 거 같다. 내내 피다 곧 지겠지만, 지고 나면 지저분한 꽃잎에 안타깝겠지만 내 인생이 목련 인생이 다 그렇다. 우린 다 한 번은 손에 담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찬연하게 빛나다가 지저분하고 소리 소문 없이 바스러진다. 온 우주에 작디작은 존재들은 그것이 나무든 사람이든 그렇게 빛 같지 않은 빛을 조금은 뿜다가 간다. 그래도 힘내자 목련! 질 때 지더라도 우아하게, 어떤 순간은 삶과 세월 속에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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