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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조각글 Mar 26. 2023

나로 인해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4)

이렇게 착한 내가 왜 괴로워야 해?

요즘은 어딜 가나 학교폭력 이야기로 뜨겁고, 세상 어떤 폭력보다도 용서 못할 죄악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국민학생이던 1990년대 초반에는 아직 세상에 '왕따'라는 말도 없었고, 학폭을 학폭으로 인식하는 사람 자체가 적었다. 학폭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저 애들이 학교 다니면서 서로 싸우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일본의 '이지메' 문화가 한국에 소개되고, '왕따', '은따' 같은 말이 유행하게 된 건 내 기억으로는 9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 즉 정당하고 건전한 공격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채로 학교 생활을 한 나는 5학년쯤부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요즘 아이들은 훨씬 빨리 크지만, 그때만 해도 4학년까지는 그저 순진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5학년이 되니 교실은 약육강식의 작은 정글이 되었다. 남자아이들은 힘겨루기를 통해 서열을 짓고, 여자아이들도 나름대로의 무리 짓기를 통해 서열을 확정했다. 배려와 양보가 몸에 배어 그때까지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나는 5학년 때부터 무리의 가장 최약층에 자리 잡게 되었다.


여자아이들은 지독했다. 세상에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다가도 뭔가 틀어지면 철저하게 따돌렸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렸고, 친했을 때 알게 된 약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친하게 지낼 때 우리 집에 와서 놀고, 사이가 틀어졌을 때 나의 궁핍한 가정환경을 떠벌려 수치를 주는 식이었다. 나는 매일 밤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지를 못했다. 학교에 가느니 당장 지옥에 가는 게 나을 정도라고 여긴 적도 있다.


그러던 아이들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잘해주고 미소를 지을 때도 있었다. 나를 이용해야만 할 때였다. 자기들끼리 또 크게 싸우게 되어 '쪽수'를 채울 필요가 있을 때,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나를 따돌리던 아이들이 지들끼리 싸우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을 왕따 시키는 방법으로 나를 지키려고 하겠지만, 그때는 어렸으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내밀어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용서하라,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 같은 말을 진심으로 믿고 액면 그대로 해석했던 나는 아이들이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 독이 든 사과인 줄 모르고 덥석 잡았다. 그중 한 아이가 사과하고 친절하게 웃으면, 괜찮다고 말하고 그들을 용서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달콤한 행복을 느꼈다.


며칠 가지 않아 그들끼리 오해를 풀고 다시 즐겁게 우정을 나누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먹잇감이 되었다. 용서의 대가가 이런 것이었나...? 사실 내가 그들을 용서한 게 아니다. 교실 속 최약체인 나에게는 용서할 권리가 없었고, 용서할 힘도 없었다.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또다시 외로워졌고, 학교에 가기 싫어 매일 울었다. 그런다고 <더글로리>의 동은이가 연진이에게 당하듯 당한 것도 아니지만,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외로움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학교 한 구석에서 두 시간 동안 운 적이 있다. 담임은 내가 수업에 없었던 것도 몰랐다. 어느 날은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학교에서 눈물을 실컷 쏟은 적이 있다. 엄마에게 운 흔적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에게 전학시켜 달란 말도 여러 번 했지만 엄마는 나를 지킬 힘이 없었다. 아빠는 친구들에게 더 친절하게 잘하고, 웃으며 먼저 다가가라는 식으로 되지도 않는 조언을 했으니 세상은 어린 내가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지옥이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희생자 예수를 기린다. 대체 왜 한 사람이 타인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당하는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나에게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풀라고 가르쳤다. 신실한 성도였던 내 부모도 나에게 똑같이 가르쳤다. 지금이야 인간 세상의 다양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화책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은 천편일률적으로 권선징악을 증명했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세상 사람의 핍박을 받더라도 내가 끝까지 진실되게 행동하면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나여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나쁜 놈이 잘 살고, 피해자가 평생을 고통받으면서 살기도 한다. 통쾌한 복수, 철저한 응징, 권선징악은 드라마 속에서나 진실이다.


당시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은 내가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어서 같이 놀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에게 위선자라고 말했다. 나의 선행은 모두 악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취급받았다. 그들을 원망하는 대신에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떨어져 나오다니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곱씹고 되씹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큰 어려움 없이 학교를 잘 다녔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주름잡을 정도는 아니었어도 수없이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우정을 나누게 되면서 어릴 적 상처는 차츰 치유되어 갔다. 대학교에 가서는 과 학생회, 자치단체 회장을 지내기도 하며 학교에서도 유명한 핵인싸로 살았다. 어릴 적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걸 바탕으로 관계의 역학을 이해하는 리더로 성장했다.


나는 사람을 지나치게 가까이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가까운 친구에게도 진심을 다 말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과는 되도록 정서적 거리를 두었고, 그래서 주변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은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만 아주 편안하게 대하지는 못한다. 나도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결코 선을 넘어 가까워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걸 불안정 애착이라고 하며, 그중에서도 회피형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불안정 애착이라도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이렇게 사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6-7년 전부터 여성운동의 열기를 타고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자매애라는 환상 속으로 기꺼이 빠져들었다.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을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지나치게 곁을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또다시 배신이 시작되었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나는 유년시절 관계 실패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갔다. 부모와 애착을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은 부모의 탓이 컸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 관계가 실패한 것은 그들이 못돼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착하디 착한 아이였고, 지금도 희생과 양보, 배려와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의 결과는 원망으로 돌아왔고, 나는 배은망덕한 이들 때문에 또다시 울면서 밤을 지새웠다. 지독하게 자책하는 버릇이 있었기에 매일 자기를 탓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내가 너무 이렇게 했나? 아니면 너무 저렇게 했나? 내가 뭘 불편하게 한 걸까?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나만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병이 났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모든 일은 중단되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억압되었던 기억 하나가 불쑥 솟아 나왔다. 의외로, 유년시절이 아니라 클 대로 크고 난 후인 10대 후반에 겪었던 사건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데,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았던 일을 완전히 잊게 되었다는 건 잊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일이었다는 뜻일 거다. 의식 저편에 묻혔던 기억이 솟아오르자,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나는 스스로 믿고 있는 것만큼 그렇게 착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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