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을러요'

유능하고 성실한 이들의 완벽주의가 불러온 나비효과  

 내일은 언제나 맑음. 

우리는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부지런하다.'게으름’ 은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다.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만성적이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지연 행동이다. 누구에게나 게으른 구석 하나쯤은 있다. 설거지를 쌓아 놓고 소파에 누워 하루종일 빈둥거리기도 알람을 맞춰 놓고도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이런 게으름은 대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거나 정말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라지고, 다시 분주하게 몸을 움직인다. 

‘나는 게을러요’ 

코칭을 위해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더니, 대뜸 ‘나는 게을러요’라고 자기 고백을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부지런하고 유능하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게으르다’고 하는 이유는 관심 분야의 책을 읽거나, 어학 공부 등 성장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데 계속 미루고 있으니 게으르다는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자책에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질책하고 있었다.  

  

유능한 이들의 미룸은 특정 영역에서만 파편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남다른 노력의 결과로 유능함과 성실함을  겸비한 그들에게 외부의 평가와 회사 내 평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외부의 간섭이나 지시 없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자부심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번번히 자신의 기대를 져버리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죽하면, 코치를 만나자마자, '나는 게으르다' 고 선언까지 하겠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할 수록 미룸에 빠진다. 지금이 아니어도 너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내일 해도 된다고 손짓한다. 잘 해온 사람일수록 이 유혹은 그럴듯하다. 이제까지 잘 해왔으니까, 어제의 유능함을 믿고, 오늘 하루 미뤄도, 내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에 마음 놓고 미룰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유능한 나와 미루는 나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다른 일에는 유능하고 부지런한데 유독 ‘어떤 일’ 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면,  ‘미루는 사람’ 이지 ‘게으른 사람’ 은 아니다. 자신감과 유능함이 오히려 미룸이라는 불청객을 초대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은 '완벽주의', 자신의 자신감과 유능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미룸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미루기는 완벽주의 성향의 그림자이다. 적당한 수준에서는 일의 효율을 높이는 강점이 되지만, 지나치면, 시작을 방해하고, 실행을 발목잡는 못된 무기가 된다. 스스로 세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꾸 힘들어지고 미루고 있을 때,  두 가지 관점으로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첫째, 내가 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Looking Good을 위한 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속마음 진실을 마주해보자. 타인에게 맞춰져 있던 초점을 가까스로 나 자신에게 돌려져야 시작할 수 있다. 결과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가며 미룸을 조금씩 미루고 있다. 

두번째, 지금 나의 시간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시간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하는 것 뿐이다.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려면, 지금 나의 시간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먼저다.  시간을 계획하지 말고 관찰만 하는 것이 핵심인데,  나의 하루, 일주일이 어떤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시간의 팩트를 알면 진단도 처방도 가능해진다. 

2주동안 촘촘히 기록된 일과표는 내가 미루고 다른 일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할 시간이 없는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거울이 될 것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