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는 장마철이 있었다. ‘있었다’라는 과거형을 쓸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나이가 엄청 많은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과는 분명히 달랐던 어린 시절을 기억할 뿐이다.
어린 시절의 장마철은 몇 날 며칠 밤이고 낮이고 비가 내렸다. 산을 옮길 정도로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추적추적,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햇살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잠깐씩 비가 그치면 집안 어른들은 얼른 비닐을 둘러쓰고 삽 한 자루 메고 논두렁을 둘러보러 나가셨다.
논에 빗물이 가득 차 있으면 물꼬를 터주기 위해서고, 논둑이 터져있으면 삽날 크기의 돌멩이를 주워다 터진 곳에 넣고 삽으로 진흙을 퍼 올려 둑을 다시 쌓았다.
집안에서는 깡통을 편 뒤 못으로 자잘한 구멍을 낸 강판에 감자를 갈아 소금과 풋고추를 썰어 한 양푼 만들어 놓고는 돌멩이로 만든 화덕에 솥뚜껑을 뒤집어 걸어 달군 뒤 들기름을 두르고는 감자부침을 지져내 들기름 냄새가 온 집안을 휘도는 일도 장마철의 일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몇 날 며칠 쏟아지는 일은 거의 없다. 쏟아진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은 찾을 수 없을 만큼 퍼붓는 비는 금방 길을 푹 패 가거나 바위를 옮기기도 한다. 골짜기마다의 물이 모여 내달리는 큰 내의 흙탕 물살은 보기만 해도 겁이 날 정도 빠르게 내달려 간다. 그러다가 뚝 그치거나 빗줄기가 얇아지면 냇물도 기세를 누그러뜨리는데 몇 날 며칠을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한다. 그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건 물론이고 논 대신 거의 밭농사인데 그마저도 풀이 나지 못하도록 비닐을 씌워 농사를 짓는다. 달구어지는 솥뚜껑도 없고 강판에 감자를 가는 일도 없으며 들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일도 없다. 감자전은 식당에서 해결하면 되니까.
삼복더위라고 해도 지금처럼 덥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한낮의 온도가 27°가 넘으면 기겁할 일이었고 해가 지면 패딩을 입어야 했는데 지금은 툭하면 30°가 넘고 해가 진 뒤에도 찜통더위 같을 때가 많다.
며칠 동안 날마다 비가 오락가락하여 햇살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데다 비 대신 햇살이 오락가락하는 어제오늘, 빗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땅이 숨을 내뱉을 때마다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후덥지근함이 보통 아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2018년 전 여름이 생각난다. 그해는 올해보다도 더 더웠다. 아니 뜨거웠다.
아직은 어스름 새벽, “어머니 여기는 안 와요~~” 해가 산 능선으로 채 올라오기도 전부터 장거리 교신(?)이 한창이다. 긴 가뭄 뙤약볕에 말라가는 양배추밭에 물을 주려 사흘 전부터 온 가족이 매달려 불 끌 때 써야 할 듯한 주황빛 호스를 들고 몇천 평 고랑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양배추가 심어진 밭을 산 뒤, 약을 치고 물을 주며 살피고 살펴 도매시장에 넘길 유통업자에게 잘 파는 게 목적인 사람이 지난해 재미 좀 봤다는, 그 소문 때문인지 감자 농사짓던 이도 올해는 양배추를 심었다.
기우제(祈雨祭)라도 지내야 하는지 밤이면 양배추 뭉그러지는 냄새가 떠다니는데 비는 도무지 오실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 나날들이었다. 아침부터 산과 숲을 가득 메우는 매미 소리가 물 고프다는 양배추들의 아우성으로 들리는 듯한 가운데, 엄마는 저 끝에서 아들은 이 끝에서 주황빛 호스로 개울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물이 가는지 오는지 살피랴 널브러진 양배추 다칠세라 조심조심 걷는 아들은 “어머니~ 안 와요~~~” 저 끝에서 “*∽∝∞§∂&δεζηιλΩα~~~” “알았어요~~~” 母子의 교신이 멀어지더니 곧 멀어졌다.
유난히 매미 소리가 크게 떠다니는 아침이 지나가고…, 다시 또 교신 시작되었다. 그동안 아침 먹으러 다녀온 모양이었다. 해는 한껏 올라와 있지만 아직은 이른 아침, 뜨거운 기운이 진즉부터 쏟아 내리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에 살갗이 쏘이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날이었다.
사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어느 곳이 30도가 넘었다고 하면 “아이고, 어떻게 산다냐? 사람 살 곳이 못 되네.”라며 군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이곳 평창에 사는 게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라고 서로 위안 삼곤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어느 곳은 35도가 넘었대~ 보통 일이 아니여. 이제 우리나라도 동남아 기후 닮아 가는 가봐.” 어쩌고 하면서 우려 섞인 말이 자연스레 오가고 있었는데 그날 끝내는 39°라는 숫자를 보는 것은 물론 느끼고야 말았다.
우리나라는 “타오름 달”이라고 하는 8월을 인디언 쇼니족은, “다른 모든 걸 잊게 하는 달”이라고 한단다. 녹아내릴 만큼 타오르니 다른 것을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싶은 게 둘 다 맞는 말인 듯하다.
어느 백화점 몇 층에서는 실리콘이 녹아 유리가 떨어지는 일이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생겼다는, 안에서 쓰는 의자에 칠을 해 놓은 페인트가 녹아 앉을 수 없다는, 아스팔트 위를 걷는 신발 바닥이 녹는다는 뉴스도 만나는 날들이다.
더워서 너무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날씨인지라 에어컨이 잘 팔린다고 한다. 그 에어컨들이 내뿜는 프레온 가스는 대기로 흩어져 지구가 뜨거워지는 데 큰 몫을 한단다. 악순환이다.
그러니 고통, 괴로움이 오는 원인 네 가지 가운데는 날씨로 오는 게 있는데, 오늘날 날씨로 괴로움은 따지고 보면 마음이 원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29°던 실내 온도는 30°다. 선풍기 바람은 미적지근하다가 뜨끈해지고 풀이 스쳐 가렵고 땀띠 난 살갗은 끈적이다 쓰라리다 가려워져 온다.
여기가 이럴지나 다른 곳은 오죽할까! 가만히 있는데도 이렇게 더운데 일하고 있는 분들은 또 얼마나 더울까!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받으면서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덥다고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