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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Aug 09. 2024

입추와 말복 사이에서

봉평 일기

문 앞 풍경

입추와 말복 사이에서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나면 자연의 법칙이라는 듯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한 풀 꺾이면서 바람도 선선해진다. 올여름은 여느 해 여름 보다 더 더웠지만 입추와 말복 법칙이 비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뜨겁고 후덥지근한 더위 막바지다. 삼복 가운데 말복이 남았지만 입추가 지났으니 매가리 없을 더위다.

매가리 없을 더위겠지만 사람들은 말복이 오면 초복 중복 때처럼 복달임을 하는데...,

언제부터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




삼복(三伏), 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높은 벼슬에 있는 관리들에게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으로 쇠고기와 얼음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럼 벼슬아치가 아닌 백성들은?

백성들은 쇠고기 대신 개고기를 끓여 먹는 한편 시원한 곳을 찾아 더위를 물리쳤는데, 이를 '복달임' 또는 '복놀이'라고 했다.

'복달임'은 못 먹어서 허해진 기운을 채우기 위해 먹는 보양식을 뜻하는데, 영암지방에서는 '복달음'이라고 했단다.


요즘은 어지간해서는 기운이 쇠해질 일이 거의 없다고 여겨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못 먹어서 영양실조 걸리는 일도 드문 일이고 사실 영양 과잉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전에 살던 곳 앞뒤옆 몇 천 평은 양배추 밭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기슭의 밭에선 도시 사람들이 사 먹을 양배추가 무럭무럭 크고 있고, 평지 밭의 양배추는 이미 팔려 제초제가 뿌려져 있다.

여하튼, 양배추가 팔려 나갈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사흘이 멀다 하고 뭘 뿌린다는 사실이다.


양배추가 제법 동그래질 무렵이면 양배추밭고랑 사이사이를 차례대로 훑어가며 무슨 액체를 안개비처럼 흩뿌린다. 한 사람은 구멍이 난 긴 쇠막대기를 잡고 앞장서 걷고

한 사람은 호스를 여무리며 쇠막대기 든 사람을 따른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걸 보니 살충제나 살균제는 아닌가 보다 하고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영양제란다.

사람만 영양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양배추도 영양제가 필요하다며.

어디 양배추뿐이겠는가!




땅 속에 미생물이 많으면 건강한 땅이다. 영양제가 필요 없다.

그런데 땅강아지나 굼벵이 풀도 못 살게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를 뿌리니까 땅의 성질이 바뀌고 끝내는 인공 영양제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그렇게 키운 채소와 과일 곡물을 먹으면서 곁들여 비타민 ABCD..., 단백질 유산균 오메가 등등을 먹는 데다 무슨무슨 기념일 상징일은 다 챙기고 있다.

그러니 허해질 일은커녕 과잉 상태가 될 수밖에.

더울 때면 먹는 음식들 (사진 : 수정향)

복날 때마다 보신용 닭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어가고 다른 동물들도 여느 때보다는 더 죽는다는데,

복달임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올여름은 참 덥고 참 뜨겁다. 밥맛도 입맛도 저절로 사그라드는지라 복날과 상관없이 입맛이 돌고 기운이 날 것 같은 음식을 찾게 된다.

봉평 하면 메밀 막국수, 술술 잘 넘어가는 메밀국수를 오늘도 한 그릇 말아먹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먹어야 더위를 보낼 듯하다.


모두 건강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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