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장소, 어떤 상황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모르는 채 어설프게 책을 펼쳐놓고 어설픈 말과 어설픈 행동으로 첫날을 맞았다.
메밀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보기 좋을 이른바 포토존(Photo zone)이 우리 부스 바로 앞에 있었다. 메밀밭 이랑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두세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있지만 사람들은 굳이 밭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목표로 걸어온다.
그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삼삼오오 들어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 다 찍으면 얼른 떠나려는 마음으로 꽃밭에서 나오다가 힐끔 보고 지나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저희는..., " "안녕하세요~~ 여기는..., " 하다 보면 슥- 지나가고 이내 곧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쓱해지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쓰지 않던 말,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아름다운 여행 되세요~~~"
"멋진 여행 되세요~~~"
"좋은 여행 되세요~~~"
"좋은 추억 많이 쌓고 가세요~~"를 원 없이 한없이 하는 가운데 기억에 남을 인연이 생겼다.
어설프게 건넨 인사말에 귀 기울여 주고 자리에 앉는, 그리고는 펼쳐진 책들을 둘러본 뒤
"작가님 책은 어느 거?"냐며 묻는 멋쟁이 손님은 나이 보다 한참은 젊어 보였다. (여든 넘으셨고 80년 대부터 해외여행을 하였다 함)
그이는 40년 남짓의 여행 경험에서 생긴 비법으로 상대방의 얼굴과 행동을 보고 귀를 기울일지 말지를 판단하는 듯 보였다.
3분의 1은 상대방 말을 들어주고 3분의 2는 자신의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눈빛과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꽤나 능숙했다.
디카시와 나의 시집을 살 거라며 챙겨 들고는 왕년에는 꽤 많은 시를 외웠는데 지금은 외우는 시가 여섯 편 밖에 되지 않는다며 나이 탓을 우아하게 하기에, "우와, 여섯 편이나요? 대단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숫자와 외우는 게 약해 아무리 좋아하는 시라도 제대로 외우는 게 한 편도 없는 나로서는 그이가 진짜 대단해 보였다.
"한 번 읊어 볼까요?"
디카시 작가와 나는 대답대신 손뼉을 쳤다.
손뼉에 화답하듯 낭랑한 목소리로 자작시 한 편을 매끄럽게 낭송한다. 목소리가 낭송에 어울렸을 뿐만이 아니라 듣기에도 좋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손뼉을 아까보다 더 크게 쳐주었다. 낭송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에 '예전에는 시낭송 모임을 했다'는 고백(?)을 했다. 아무튼, 배경 음악은 없었고 관객도 둘 밖에 안 되었지만 흐드러진 메밀꽃밭이 훌륭한 무대가 되어준 그날의 시낭송 자리는 '효석문화제'와 더없이 어울리는 자리였다.
시간은 어느새 훌쩍, 1시간도 더 지났다. 다른 곳은 둘러볼 필요 없다는 말과 관광버스로 함께 온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라며, 그러나 그렇게 다니는 건 싫다는 그이는, 이곳(평창의 작가 부스)을 만나 행복한 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두 시간이라 모이라는 곳으로 시간 안에 가야 한다며 아쉬운 듯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고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덧붙이며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으로.
추억으로 저장한 쇠날의 장면이다.
어설픈 첫날이 지나고 주말인 흙날은 지역탐사 사진동아리 회원들이 평창의 곳곳 특히 봉평을 담은 사진을 우리 부스에 거는 날이다.
나는, 우리 지역 곳곳을 탐사하고 사진으로 담는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는데, 동아리 벗들은 (비록) 아마추어지만 우리 지역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이곳에봉평과 인근 곳곳의 사진을 하루 동안 전시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그 사진들을 챙겨 부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낮고 짙게 깔린 운무가 오늘도 많이 더울 거라고 알려준다.
사진 동아리 수업으로 봉평 도서관에서 신작 '평창'을 낸 김도연 작가의 강연이 있는 날, 사진을 얼른 걸고 수업에 참여할 생각에 나도 몰래 손이 빨라진다. (하지만 못 갔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까지 함께한 사진동아리 벗들이 김도연 작가 그리고 이홍섭 시인과 함께 등장했다. 한산했던 부스가 왁자해졌다.
'평창의 작가들' 작가이기도 한 김도연 작가의 책을 들고 줄 서서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더불어 우리도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으로.
오랜 인연의 담마벗이 현장 수업이라는 마음으로 작가들 책 코너를 맡아 안내를 하고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자 많은 이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