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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쌤의 방구석토크 Dec 16. 2023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

좋은 관계의 시작, 적당(適當)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


열심히 가르치려고 준비했는 데 따라주지 않고 불평하는 아이들, 익살스러운 장난으로 수업의 맥을 끊는 아이들을 보며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선임들이 한 이야기 중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고, 그 당시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제대하고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이 드니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나는 과연 잘못한 것이 없을까?’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학교에서 동료 교사나 학생들의 무관심도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기대가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지나침이 아이들을 지치게 하고 불평하게 만들었습니다.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톨스토이 우화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서로를 너무나 사랑한 소와 사자가 있었다. 둘은 결혼을 했고 서로 최선을 다해 살기로 약속했다. 소는 매일 맛있는 풀을 뜯어다가 사자에게 정성을 다해 바쳤다. 사자는 소의 정성을 봐서 맛있게 풀을 먹었다. 사자 또한 매일 맛있는 고기를 잡아다 소에게 바쳤다. 소는 사자의 정성을 봐서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점점 지쳐갔다. 소는 초식동물이라 고기가 아닌 풀을 좋아하고, 사자는 육식동물이라 풀이 아닌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사랑했지만 헤어졌다. 둘은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참은 줄 알아. 나는 최선을 다했어'


소와 사자 모두 자기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배려는 배려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맺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나 위주로만 생각하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최선은 최악만 남게 됩니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와 함께 근무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면 바람직한 모습보다 못마땅한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좋은 마음을 갖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합니다. 나름대로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관심은 잔소리이자 간섭일 수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赤糖’(적당)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한자를 풀이하면 빨간당이라는 뜻인데 이 카페에 유명 상품인 팥양갱을 보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관계에 대해 고민할 즈음 이곳에서 저는 ‘赤糖’(적당)의 동음이의어인 ‘適當’(적당)이 생각났습니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인 ‘적당’이 좋은 관계를 맺는 출발점이 될 것 같았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적당한 관심, 적당한 거리, 적당한 배려...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가 아니라 ‘소용 있게 잘해주자'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적당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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