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선배님과 함께 나눈 화요산행 (feat 소요산)
새로운 하루가 열리기 직전인 새벽 4시입니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채웁니다. 무럭무럭 김을 내며 토로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덜 뜬 눈을 뜨)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물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방 안에서 현관까지 10m 종주"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다행스럽게 "게으름"과 "다음에"라는 검은 구름을 잘 뚫고 나왔습니다.
5시에 화정역에서 선배님을 뵙습니다.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웁니다.
일산에서 소요산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 거리입니다.
차 안에서 서로의 안부, 조르바님의 강북 5산 산행이야기, 화요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린님의 건강에 대해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소요산 주차장과 일주문을 거쳐 등산로 입구에 도착합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덕분에 주차료와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행운도 누립니다.
산행 입구에서 선배님과 오늘의 시작을 기록합니다.
가벼운 산책과 태극권으로 매일 건강관리를 하시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곧은 기품이 느껴집니다.
반면에 청포도의 얼굴과 몸에는 군살이 가득합니다. 반성합니다.
오늘은 일주문- 구절 터 - 공주봉 - 의상대 - 나한대 - 칼바위 - 상백운대- 중백운대- 하백운대- 자재암 순으로 걸어갈 예정입니다.
공주봉으로 오르는 구간의 오르막이 대단합니다. 거리는 1km 정도이지만, 경사도가 심합니다.
불길하고 우려했던 일은 언제나 피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 부족한 운동량으로 인해 다리가 무겁습니다.
거친 숨소리와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들립니다. 조금 일찍 휴식을 취했어야 했습니다.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며 안정을 취합니다.
청우 선배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심한 감기 이후 오랜만에 걸어서 힘들죠? 천천히 갑시다. 여기가 아주 세네. 북한산 하루재부터 위문까지 가는 것 보다 더 힘들어요. 여기가 은근히 사람 잡는 곳이네"
"사람 잡는 곳"이라는 단어 하나하나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선배님께서는 지니신 언어의 수준을 낮추고 그 위에 후배에 대한 위로를 담으셨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찰나의 순간에도 신뢰와 사랑이 느껴집니다.
맞은 편 의상대 쪽에서 비치는 햇빛처럼 말입니다.
공주봉 아래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푸른 소나무 아래에서 서로를 남깁니다.
환한 선배님의 얼굴에 비해 청포도의 모습에는 어둠이 가득합니다.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걸어왔던 몸의 기억이 되살아나길 바랄 뿐입니다.
숨을 고르며 한걸음 한걸음 다시 올라갑니다.
공주봉에 도착했습니다.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2년 전 쯤일까요.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영하 14도였던 그 날 아이들과 공주봉에 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진하와 중하 그리고 윤하가 바라보던 그 광경을 아빠가 다시 한번 가슴에 담습니다.
아이들은 산행 경험이 부족했던 사람을 아빠라는 믿음 하나로 추위를 참았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참 대견스럽습니다.
공주봉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눕니다.
잘 익은 빵의 고소함과 진한 커피의 향기가 지친 몸과 가쁜 숨을 평온함으로 이끕니다.
의상대로 향합니다. 이제부터는 능선 길입니다. 몸의 수고로움을 겪은 사람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차
례입니다. 과호흡으로 검은빛을 띄던 얼굴이 조금씩 화사해집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마음이 끌리는 등로가 있습니다.
굳이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숨기지 않으나, 모두 보여 주지도 않습니다.
거칠지 않지만, 평탄하지도 않습니다.
그곳의 절반은 숲길이고, 나머지 반은 터져 있어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 길이 소요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을 드리기 전에 선배님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 이 길이 너무 좋네."
귀로 들어온 말들이 조각조각 나누어져 입가에 미소로 모입니다.
그리고, 답합니다. "저도 좋습니다. 선배님!!"
<장자> 소요유
“북쪽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이 붕새의 등 넓이 또한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온몸의 힘을 다해 날면 그 활짝 편 날개는 하늘 한쪽에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붕은 바다 기운이 움직여 대풍(大風)이 불 때 그것을 타고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 바다란 곧 천지(天池)를 말한다.”
이는 <장자>의 첫 번째 편, 첫 이야기이다. <장자>에서 장자의 중요 사상인 자유(自由)를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 중 하나인 소요유(逍遙遊)는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소요유는 노닐 소(逍), 노닐 요(遙), 놀 유(遊)의 문자적 의미인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깃발의 끈과 같이 얽매이는 바가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즉 장자에게 있어서 소요유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정신을 말한다.
소요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발밑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보는 오만의 즐거움을 잠시 만끽합니다.
공주봉에서 만났던 외국인 부부를 여기서 또 만납니다. 저희에게 " 북한이 어디냐?"라고 묻습니다. 외국인의 눈에는 남과 북이 구별되어 있음이 신기한가 봅니다.
곧바르지 않는 나뭇가지에서 펄럭이는 태극기와 계단 옆 한편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정상석이 조금은 쓸쓸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낡아도 대한민국의 국기입니다.
그리고, 작고, 낮으며, 때묻었지만 옛 정상석에는 빛나는 추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의상대로 오는 도중에 제가 선배님께 "선배님!! 소요산의 "요"가 한자어로 어떤 의미인가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 해답을 의상대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장자>의 첫 번째 편이 소요유입니다.
"청포도님이 오늘 소요산에 왔으니,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것입니다. 곤이 붕이 되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것입니다."
삶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후배에게 오늘 이후 곤이 붕이 된다고 덕담을 주십니다.
이제 나한대를 거쳐 상백운대로 갑니다. 아이들과 왔을 때는 나한대를 거쳐서 자재암으로 하산했습니다. 상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선배님과 청포도 모두 초행길입니다.
길목마다 멋진 바위와 소나무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습니다.
바위를 뚫고 나와 용트림을 하는 듯한 소나무를 보며 힘찬 기운을 얻습니다.
어떤 구간은 도봉산과 같고, 또 다른 곳은 북한산을 닮았습니다.
땅속을 수백 차례 헤치고 나서 만난 보석처럼 오늘의 소요산은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청우 선배님께서 연신 즐거워하십니다.
"여기가 진정 공룡능선입니다."
"길이 정말 재미있어요."
오늘의 산행을 추천한 청포도의 어깨가 들썩입니다.
상백운대 꼭대기에는 의자처럼 생긴 바위가 있습니다.
청포도가 말합니다. " 선배님!! 여기가 용상입니다!!"
그 말을 들은 선배님께서 크게 웃으십니다.
푸른 숲 아래 마련 된 천연 용상에 앉아서 천하를 호령해봅니다.
즐겁고 행복한 발걸음은 중백운대로 이어집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멋진 조각 작품을 만납니다. 두 사람의 감탄사가 소요산에 은은하게 퍼집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최고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적어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마음 뽐내는 청포도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산속 바위 위에 서서 빛과 어둠, 비와 눈 그리고 바람과 함께 자라난 소나무 위에 몸을 가볍게 얹어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소요유"라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백운대에서 하백운대로 향하는 등로에는 예쁜 돌조각이 많습니다.
선배님께서 땅에 떨어진 돌들은 살피십니다.
"청포도님!! 납작하고 평평한 돌이 보일까요?"
청포도는 이유를 묻지 않고 열심히 찾습니다.
"선배님!! 이것이 좋은 듯합니다"
선배님께서 "아!! 괜찮네요"
그제야 돌을 찾은 이유를 여쭈어 봅니다.
청우 선배님께서는 자연스러운 돌 위에 반가사유상을 올려 두시겠다고 하십니다.
자연 위에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그려봅니다.
하백운대에 도착했습니다. 소박하고 단출한 식사를 함께 합니다.
함께 걷고, 함께 차를 마시며, 함께 밥을 나누어 먹었으니 선배님과 저는 오늘도 가족입니다.
따뜻한 물을 부어 고소한 누룽지를 불립니다. 봄날의 상큼함을 닮은 김치와 고소한 김으로 싱거움을 달랩니다.
두 사람은 " 린님도 함께 왔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합니다.
밥을 먹을 때 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은 분명 가족입니다.
하백운대에서 자재암 하산 길은 급경사 구간입니다.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듯 잘 만들어진 계단길로 급하강 합니다.
힘찬 바위 산 사이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강한 기운을 담아낸 자재암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나한전과 원효폭포를 바라보며 맑은 기운을 몸과 마음에 담습니다.
원효샘의 물도 한 컵 가득 담아서 마십니다.
달콤한 물이 온몸에 퍼집니다. 땀을 식히고, 피를 맑게 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보온병의 물을 버리고, 원효샘의 물을 채워 갈까 순간 고민합니다.
아쉽지만 뒤돌아섭니다.
눈앞에 보이는 좋은 것을 위해 낡은 것을 버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니 원효샘에 또다시 와야겠습니다.
단풍과 햇살 가득 한 날의 시원한 물 한 잔을 기다립니다.
선배님과 원효대 앞에 섰습니다. 맞은편에 보이는 바위의 기상이 범상치 않습니다.
고요한 저녁 정좌하여 바위를 바라보며 묵상하는 고승의 모습을 기립니다.
‘소요유(逍遙遊)’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으로 되어 있습니다. 책받침 변(辶)은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辵)’라고 합니다.
그러니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는 것’입니다.
청우 선배님과 함께 담은 오늘의 발걸음은 소요산이라는 이름 그대로였습니다^^
푸른 소나무는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땅속으로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사람은 견고한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뒤돌아 봅니다.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걸어온 길을 돌아봅니다.
"선배님!! 상백운대로 가는 길 목에 우뚝 솟아 있었던 소나무 기억나시지요?"
"그럼요!!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한 외모를 지니고 바위를 용솟음치며 뚫고 올라온 나무 말이죠?"
"나무가 바위를 뚫고 나온 걸까요? 아니면 바위가 나무를 배려해 준 것일까요?"
"하하하 그러게요 하하"
"선배님!! 저는 자재암이 참 좋습니다. 2년 전 소요산에 처음 왔을 때, 어둠이 깔릴 무렵 고요하게 전해지는 자재암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릅니다."
" 아~그래요ㅎㅎ 무슨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ㅎㅎ
"전화가 옵니다.
"선배님 어디쯤 내려오셨어요?"
"양반은 못됩니다!!"
"하하하하하"
전생에 인연이 깊었던 한 조각을 우리는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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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우선배님과 함께 나눈 "소요유" (feat: 소요산)|작성자 일산청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