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같은 하루 -
최근 나에게 지옥 같은 하루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어린 아이 마냥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혹시라도 옆방에 있는 중학생 아들이 들을까 싶어 화장실로 들어가서 몰래 소리 내어 울었다. 숨죽이어 울다가는 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내 속에 있는 울분이 점점 웅크러져 심장을 쬐어오는 것만 같아서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엉~어~어~어~~엉~어~어~어~~
내 속에 있는 울분과 그 모든 찌꺼기가 눈물, 콧물, 소리로 나오고 나니 평정심이 약간 생기는 듯했다.
아버지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에게 전화해 주세요” 엄마의 치매 증상 중 가장 최악인 망상이 또 생겼나보다. 엄마는 돈을 숨기고 돈을 찾고 돈을 찾지 못하면 아버지가 훔쳐갔다, 그래서 도저히 아버지랑 살지 못하겠다며 이혼하겠다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초긍정적이며 낙관성이 뛰어난 아버지가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가 엄마의 망상 증상이 발동할 때이다. 이럴때면 아버지도 방법을 찾지 못하고 힘든 나머지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면 이 자식, 저 자식,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망상 증상에 나타나는 돈에 대한 관심을 다른 화제로 바꿔서 그 증상을 완화 시키려고 온갖 시도를 한다.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가끔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전날 한숨도 자지 못한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보니 아버지는 참다 참다 못해 아버지의 안식처인 김해로 가버렸다. 그 전날 낮까지만 해도 교회에 잘 다녀왔고 고운 목소리와 활기찬 에너지로 전화를 받던 엄마의 목소리가 저녁이 되자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가 돈을 훔쳐 가고 서랍에 숨겨놓은 떡까지 몰래 가져가는 째째한 놈이라는 논리를 무한 반복 하는, 엄마의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망할 놈의 망상을 정말이지 깨어 부수고 싶었다.
혼자 계신 엄마를 찾아갔다. 흰머리 염색하는 동안 끊이지 않는 엄마의 망상, 그 망상에 맞춰 나 또한 망상으로 엄마를 대하는 것이 최선이리라. 기억력 저하와 망상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처참하리 만큼 잔혹하다. 함께 외출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가방이 없어졌다고 한다. 염색하고 머리 감는 사이에 아버지가 와서 자신의 가방을 가져갔다며 아버지에 대한 끊임 없는 욕설을 내뱉는데 그 욕설은 생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으며 엄마의 과거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조만간에 엄마 친구분을 만나서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캐물어 보고 싶다. 욕설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서라도..그 가방을 찾는 동안 30분 동안 끊임없이 돌아가는 망상 체계가 만들어 내는 언어는 엄마의 밑바닥을 드러나게 했고 나의 엄마지만 순간 치매에 걸린 모르는 할머니로 모녀 사이를 부정하고 싶기도 했다. 딸 중에 가장 엄마의 성향을 많이 닮은 나에게 저 유전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나의 미래의 모습이 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나의 무의식 중의 불안함을 그런 생각으로 덮어버리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가방을 찾았다. 그것도 내가! 침대 및 상자 안에서 발견했을 때 드디어 엄마에게 큰 소리 칠 수 있었다. “이거 뭔데? 엄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엄마가 이런 식으로 숨기고 기억 못해서 못 찾는 걸 아빠가 훔쳐갔다고 하잖아! 아빠가 언제 왔다 갔다고 그러노, 가자!”
엄마랑 있으면 내 삶의 질이 급속도로로 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루도 힘든데 365일을 함께 보내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언니와 만나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엄마의 망상도 조금씩 회복 되어 현재로 초점이 맞춰지고 감정도 순하게 가라앉았다. 망상만 없다면 견디어 낼만하다. 똑같은 말 반복과 기억을 못하는 건 계속 말해주면 되는 일이니. 좀 있으니 불안한지 집에 가자고 난리다. 애들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 출발해서 애들 픽업하고 엄마 집에 데려다 준다는 말을 10번 넘게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재촉에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학원 앞에 20분 전에 도착했다. “학원에 불꺼졌다. 애들 마친거 아니가, 올라가봐야 하는거 아니가” 똑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인가? 어떻게 하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붙어 있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제발 말 좀 그만 해!!!!” 정적이 흐르고 좀 있다 천연덕하게 눈감고 코 골고 자는 엄마, 그런 엄마를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내 눈엔 눈물이 흐르고 마음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 날 밤 나는 목놓아 울었다. 엉~~어~~어~어, 엉~~어~어~어
이런 일이 처음이라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밤길 잃은 나그네인양 두 팔 벌려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얼른 저 멀리 밝은 불빛이 우리를 비춰주길. 아니 우리 가족이 그 불빛이 되는 순간이 오길..희망하며 힘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