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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 Aug 23. 2015

1인 가구에게 '끼니'라는 것

밥심? 밥도 밥 나름이지. 

요즘 TV를 틀면 너 나할 것 없이 요리로 절반이 채워지는 것 같다. 맛있겠다며 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 이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된다. 나만의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밥 한 끼 제대로 차려먹는 것도 힘든 1인 가구 이기 때문이다.


밥을 차려먹는 것. 어찌 보면 참 쉬운 일이다. 30분이면 밥솥에서 갓지은 밥이 나오고 웬만한 반찬은 사다 먹을 수도 있다. 대충 야채 썰어 넣고 장 풀어 끓이면 찌개가 된다. 그래, 요리프로를 보고 따라한 첫 요리도 꽤나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밥을 차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다. 혼자 먹기 위한 요리를 하는 것은 그리 의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엔 통 취미가 없었다. 먹는 걸 좋아라 하고 다양한 음식에 대한 도전정신도 남다르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요리만큼은 내 분야가 아닌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소풍날 김밥을 싸가던 초등학생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고 원룸에 달린 좁은 주방에서의 첫 요리는 어마어마한 실패였다. 도대체 감자조림이라는 것에 간장과 감자 이외에 뭐가 들어가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검색만 해보아도 알만 한 레시피지만 감자와 간장이 전부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레시피를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감자조림은 새까맣게 간장을 머금고 있었다. 말도 안되게 짜던 그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를 위한 요리였다면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준비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더운 여름을 에어컨 없이 지내고 있던 나는 라면 하나를 끓이는 것도 벅찼다. 먹는 즐거움 보다는 뜨거운 실내 공기를 더욱 덥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사이 원룸에서 방 두개 짜리 빌라로 이사를 왔지만, 나를 위한 요리는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레시피는 늘어갔지만, 배가 고프기 때문이었지 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차가운 반찬을 통째로 늘어놓고 밥을 먹던 나는,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여겨졌다. 이 집에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처량했다. 사료만 먹는 우리 집 고양이가 나를 위해 자신의 밥을 나눠줄 일은 더더욱 없었다.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나에게 정성스러운 집밥을 대접해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로 '잘 차려진 한 끼'을 택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들 한다. 정말 밥심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밥에 담긴 정성을 함께 먹기 때문일 것이다. 미각이 주는 즐거움 보다는 식사라는 행동에 더욱 무게를 둔 말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바쁜 아침이라면 남은 반찬을 넣어 만든 삼각김밥. 밥은 꼭 새로 한다.
라면을 먹더라도 푸짐하게-  (라면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진고기로 맛을 낸 비빔국수- 간편하지만 그럴싸 한 맛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간단히 먹는 끼니라도 신경을 쓰게 된다. 방금 한 밥을 먹기 위해 밥은 한 끼 분량만  짓는다거나, 소스는 직접 만들어 본다거나, 여유가 있을 때는 식당에서나 먹었을 법한 음식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물론 엄청난 맛이 나오진 않겠지만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이젠 즐겁다.


혼자 사는 이에게 끼니라는 것은,

나를 토닥일 수 있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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