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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 Sep 11. 2015

일은 하기 싫은데, 돈은 벌어야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벌써 월세날인가? 이번 달도 카드값이 예산 초과다. 겨우 생활비를 빼고 남은 돈도 카드로 탈탈 털리고 나니 남은 건 몸뚱이와 별볼일 없는 살림살이들. 그렇게 몇 해를 버텨왔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서 쫓겨나다시피 독립을 했다. 그렇게 4년 차.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니 매달 돈에 쫓기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엄마랑 같이 있을 때가  좋았어,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독립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조언을 구해오면 "집에 있을 때 돈이나 많이 모아  둬."라는 대답으로 한탄을 대신한다.


프리랜서에게 있어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업무를 본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평일에만 쓸 수 있는 쿠폰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 큰 장점이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도 편하다. 한쪽만 시간을 맞추면 되니. 평소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대신, 규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작업을 핑계로 새벽까지 잠 못 드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평소엔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지만, 매달 마감일이 정해진 생활에 긴 휴가는 꿈도 못 꾼다. 혹여나 다른 일감이 들어올까 휴대폰을 꺼두는 자유는 생각도 할 수 없다. '1장 1단'이라는 말을 그렇게  4년째 몸소 실감하고 있다.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


일은 하기 싫은데 돈은 벌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회사 복지가 좋아 마음대로 월차를 쓸 수 있는 직장인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정해진 휴가조차 눈치를 보며 써야 하는 상황이다. 프리랜서 혹은 1인 기업가라면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행여나 다른 클라이언트를 놓칠까, 일감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까, 계약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될까. 작업을 할 때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겨난다. 일을 못하면 차라리 욕을 먹고 싶다. 회사는 프리랜서가 일을 못하면 아무 말이 없다. 대신 다른 작업자를 찾을 뿐이다.

다양한 이유가 돈을 벌어야 한다며 나를 재촉한다. 매달 빠짐없이 날아오는 카드 사용내역과 공과금들. 29일 마다 알람을 맞춰 둔 월세 날. 고양이 사료가 바닥을 보일 때. 고양이 모래가 떨어질  때쯤. 쌀은 점점 줄어들고, 반찬거리가 마땅하지 않을 때, 사람들을 만날 때, 모임에서 회비를 걷을 때, 심지어는 화장실 청소용 락스통이 가벼워졌을 때 조차.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글 쓰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원고 작업에 쏟아부었다. 단 한 번도 장래희망이 작가였던 적은 없지만 우연한 기회로 펜을 잡게, 아니 키보드를 잡게 됐고, 신기할 만큼 꾸준히 일이 들어왔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때, 재능이 있건 말건 이 일을 좋아하게 됐고, 계속 좋아지고 있다.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많지만 그 또한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지금껏 한 번도 간절히 원한 것이 없었기에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내겐 선물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다시 눈을 감을 수 있는 여유. 서너 시간쯤 마음 놓고 독서를 할 수 있는 안정감. 시간마다 휴대폰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이런 사소한 것들이 커다랗게 느껴질 때, 혹은 엄청난 부담감으로 인해 머리가 멈춰버렸을 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고, 일은 해야 한다.

사람 구실은 해야 하니까.


그냥, 그렇다고요. 일은 하기 싫지만 할 수밖에 없으니 한탄만 합니다.

특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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