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 소.우.주.'지기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행복을 낚아채고...
습관 하면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처음으로 제 의지로 만들다 보니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습관이 있어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바로 '일기 쓰기'입니다. 누군가는 "뭐 대단한 거라고.." 하며 가볍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거든요.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정말 제 자신이 '기특하다' 여겨지네요
돌이켜 보면 어릴 적에는 제가 일기 쓰는 걸 참 많이 싫어하고 귀찮아했던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랬나요? 설마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아무튼 그림일기를 쓰는 것부터 버거워했던 것 같고, 방학 숙제로 해야 했을 때에는 개학을 며칠 남기고 가족들을 많이 고생시켰던 기억이 나네요. 가족이니까 해줬지 아니면 누가 도와줬겠어요. 지금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일기를 포함해서 메모하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기억하면 되지 뭘 귀찮게 메모를 해'라고 생각하며 건방을 떨었었죠.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었는지는 가물가물해졌지만, 아무튼 좀 시건방졌었네요. 철 모르던 시절이었다 해도 창피한 건 어쩔 수 없군요
기억력에 의존하며 지내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간단한 메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라는 곳에 들어갔더니 메모를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회의 때 수첩을 안 가지고 들어가면 윗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고, 뭔가 끄적대는 시늉도 안 하고 있으면 몇몇 선배는 일부러 트집을 잡기도 했었거든요. 이유야 어찌 되었던 덕분에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으니 그분들께 지금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언제였나 기억을 떠올려 보는데... 예전 직장 생활의 한 때가 생각나는군요.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던 저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죠. 나름 바라던 목표는 있었지만 조직이 원하는 업무를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던 어느 날...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부서로 뜬금없이 발령을 받고 말았지 뭡니까.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업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새 부서의 일은 서툴러서 쉽지 않았지만 힘들다 느껴지기보다는 계속 기대하게 하고 노력하게 하더군요. 하나하나 배워가며 주어진 업무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당시 기업 교육 쪽에서 유행 중이던 리더십 프로그램의 작은 한 꼭지를 맡아서 진행하는 거였죠. 직원들에게 간단하고 알기 쉽게 플래너라는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었어요
주어진 업무니 '실수는 하지 말자'라는 수동적인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적인 갈등이 시작되더군요.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와 목적을 알면서도 제 자신은 그냥 단순히 업무 수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것이니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라고 하고 있었으니 마음이 많이 불편해진 거죠. 굳이 그럴 필요도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도 떨어지더군요. 해결책은... 딱 하나 제대로 실천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 해보자 마음먹었죠. 안 돼도 손해 볼 건 없다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습관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다시 충전되더군요
솔직히 '일기 쓰기'라는 습관이 만들어지는데 우연과 행운이 있었던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에 습관이 되었다는 것 역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죠. 노력을 선택한 그때의 저 자신에게 칭찬해 줘야겠어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해'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생활에 쫓겨 매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던 중 우연과 행운도 있었지만 선택과 의지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건 제겐 정말 축복이었죠.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취감을 얻고 더불어 자신감까지 올라가며 삶의 만족도까지 올릴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요
지금은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습관이라고 말하기까지 시간도 필요했고 여러 번의 위기도 겪었죠.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은 했는데... 왜 그리 다른 할 일이 많이 생기고 쓰지 않으려는 핑곗거리가 넘쳐나던지요. 그런데도 유혹에 넘어가 그냥 지나친 다음날에는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었죠. 그 덕분인지 포기보다는 '귀찮고 힘들어도 매일 한 줄이라도 써보자'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물론 결정을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더라고요
쓸만한 내용이 있을 때는 한 줄이 아니라 열 줄 스무 줄도 쓸 수 있지만 매일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말자 생각하고 우선은 업무 내용을 기록하는 것에 더해서 좋은 문구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계획했던 일들이 잘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정리를 했고요.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간단하게라도 살아낸 하루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거나 그날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도 기록했었지요. 정말 쓸 게 없다 느껴진 날에는 저 자신을 위한 응원의 글을 주문을 외우듯 쓰기도 했고요. 그렇게 하루하루 수련을 하듯 한 장 한 장 써나갔습니다. 초기에는 플래너 양식을 활용하며 도움을 받았지만, 여러 번 변화를 주며 차츰 나름의 방식으로 '나다운' 기록을 만들어 나가고 있네요
일기가 습관이 되는데 제 자신의 노력은 당연한 거고 문명의 이기가 도움을 준 것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휴대폰 알람이 성가시게 만든 게 결국에는 매일 일기 쓰지 않으면 안 되도록 등을 떠밀더군요. 몇 년 전 TV에서 모 연예인이 모든 스케줄... 영양제 먹는 것까지 알람을 맞춰놓고 챙기는 걸 보고 격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나네요. 매일 같은 시간대에 알람이 어김없이 울리다 보면 종종 짜증도 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 참아내게 한 저의 인내심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순조로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 아니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죠. '일기'를 습관으로 힘겹게 만들어가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졸면서 집에 가다가 차에 가방을 놓고 내리고 말았지 뭡니까. 다른 건 아쉬운 정도였는데, 플래너 속의 기록들이 없어졌어진 건 정말 타격이 컸습니다. 특히 일기를 잃어버린 건 속이 쓰릴 정도였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에는 되찾을 수 없더군요. 짜증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지만 제 탓이니 어쩔 수 없었죠. 그 순간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살자'는 유혹이 마수를 뻗쳤고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었네요
이틀 정도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일기를 쓰지 않으며 얻을 편안함이 쓰면서 얻게 될 효용에 훨씬 못 미친다 생각되더라고요. 그럼에도 편함에 대한 미련은 끈질기게 유혹의 손길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결국에 저는 금전적 지출을 통한 '발목 잡기'라는 극약 처방을 쓰고 말았습니다. 새 양식을 구입하여 눈앞에 놓아두니 아까워서 다른 선택을 할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가끔은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말았네요
이후에도 여러 번의 이런저런 잡다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럭저럭 잘 넘겼습니다. 희한하게도 습관이 되니 안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이 글을 마치고 나면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쓰고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