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니 Jun 23. 2024

미래서 DI북

1988년의 어느 무더운 여름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두 명의 20살 청년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장영실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요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애야, 너 꿈이 뭐야?"


최자애는 시원한 밤바람을 느끼며 살짝 미소 지었다. "세상을 바꾸는 책을 쓰고 싶어. 그 책으로 더 이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지."


장영실은 눈썹을 찌푸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왜 책이야?"


자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옅은 별빛이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나는 책이 사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바뀌고 싶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사람들이 자연과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지며 사는 세상,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상식이자 의무인 그런 세상...넌?"


영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난 과학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 싶어. 과학기술은 문화와 전통을 넘어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니까."


자애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과학의 한계는 너무 이성적이랄까? 인간은 감성적인 존재라서 과학만으로는 세상을 완전히 이롭게 할 수 없을 거야. 책을 통해 교양을 쌓고 도덕 수준을 높여야 과학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영실은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책의 한계는 그 내용이 대중들의 시선에 집중되어 있다는 거야. 사람들의 바람이나 꿈과 특성이 다 다른데 말이야. 수많은 책이면 모를까 몇 권의 책으로는 사람도 세상도 바꾸기 힘들다고 생각해."


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과학기술과 책을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영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그런 책이지 않을까?"


자애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자신에게 맞는 올바른 꿈을 찾게 해주고 잠재력을 계발시키는 그런 책이 세상에 있으면 좋을것 같은데!?"



영실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음, 어쩌면 그럴수도... 그런 책이 있다면 꿈과 지능을 합쳐서 '꿈의 지능서', 영어로 줄여서 DI book, 혹은 미래서 어때?"


자애는 미소 지었다. "아무 이름이든 다 좋아. 그런 책이 발명된다면 말이야"


"그럼 나중에 네가 맘에 드는 이름으로 하자"


영실은 결연한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반드시 만든다 약속할게"


자애와 영실의 일상적인 논쟁은 종종 자애에 의해 극적으로 통일되곤 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사랑했고,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이들은 모두 지적 호기심이 강했고, 자연을 사랑하며 또래들과는 다른 관심사를 공유했다. 둘이 함께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잊었고, 이 세상에 반쪽이 있다면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자애와 장영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곁에서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성장했고 그들의 사랑의 결실로서, 2년 후 장리진이 태어났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장리진은 15살이 되었다. 소년이 된 리진은 그동안 독서를 통해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지식을 쌓아왔다. 그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고, 그 사랑은 훗날 그의 통찰력과 리더십 발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느 주말 오후, 리진은 오랜만에 가족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책장을 뒤지고 있었다. 책장의 상단에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여러 가지 오래된 앨범들이 놓여 있었다. 리진은 먼지를 털어내며 앨범을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그러던 중, 책장의 가장 구석에 있던 낡은 상자가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리진은 상자를 꺼내 열어보았고, 그 안에는 한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책의 표지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미래서"라는 제목이 은색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리진은 책을 살펴보면서 부드럽고 매끄러운 재질의 페이지와 표지가 평범한 책이 아님을 느꼈다. 그리고 책을 펴본 순간, 이 책이 생전에 아버지가 남긴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리진은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의 아버지 장영실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최자애는 사업가이자 작가(사실 작가로 더 유명하다)로서 명성을 날리며 아들을 홀로 키웠는데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훔쳤다 자애는 어릴적부터 리진에게 꿈을 가지라고 늘 격려해주었다


책을 펼치자,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먼 미래에서 쓴 아버지의 사랑 일기가 담겨져 있었다. 글을 읽을수록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이 있었지만, 읽을수록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살아있고 엄마는 세상을 떠난 현실과는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미래에 대한 묘사들이 너무 리얼해서 픽션으로는 믿기 어려웠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세가지 질문을 글로 답하고 책을 다 읽을 때쯤, 리진은 이 글이 아버지가 생전에 쓴 픽션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책의 글씨들이 모두 사라지고, 페이지가 빛을 발하며 새로운 글씨들이 나타났고 표지는 미래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 예지의 서로 바뀌어져 있었다 리진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호기심에 휩싸여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미래서"라고 써있지만, "DI북"이라고도 합니다. 이 DI북의 기능은...'


그가 처음 페이지를 펼쳤을 때, 책이 미세한 진동과 함께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책은 그가 손을 대는 순간, 그를 분석하고 있었다.


미래서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책으로, 사용자가 접촉하면 다양한 기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을뿐만 아니니라 책의 표지는 내장된 센서와 나노 기술을 통해 사용자의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수많은 초소형 카메라를 통해 행동을 관찰하며 필요에 따라 다양한 책으로 변신도 가능했다 페이지는 유연한 전자 종이로 만들어져 얇고 가볍지만 고무처럼 부드럽고 유리처럼 매끈하며 강철보다 수백 배 강한 재질이었다 DI북은 15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페이지마다 나노기술 기반의 멀티 디스플레이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DI북은 사용자의 성향과 특성을 분석하여 최적의 학습 경로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또한, DI북은 사용자의 성장에 맞춰 진화하며, 나노 로봇이 뇌의 뉴런과 시냅스를 수십배, 수백 배 빠르게 연결해 사용자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


리진은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기술의 정교함과 지능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의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고,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런 책이 존재하다니 믿을 수 없어." 그는 생각했다. 이 책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기였다.


DI북을 다 읽고 난 리진은 또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DI북을 활성화하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자신이 모두 해당 되었다는 것이다.


1. 사용자는 15~30세 사이의 연령이어야 한다.

2. 글 읽기가 친숙해야 한다.

3. 책에 침을 묻혀야 한다.

4. 책에 낙서를 하며 읽어야 한다.

5. 책의 모든 페이지를 3시간안에 넘겨야 한다.

6. Wi-Fi가 세상에 존재 해야 한다

7. 다음 세 가지 질문 글 혹은 말로 답변해야 한다:

   -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몰입, 미래)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가치관, 과거)

   -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잠재력, 현재)


리진은 책의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 "이 책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구나." 그는 생각했다. 미래서는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꿈꿨던 세상을 담은 기적의 도구였다.


그런데, 리진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그는 책을 손에 쥔 채 문득 생각했다. "근데 이 DI북은 미래에서 어떻게 과거로 온 거지?"


리진은 의문을 풀기 위해 엄마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