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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니 Jul 01. 2024

차원의식

저녁쯤, 리진은 엄마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작업실 문을 열자 따뜻한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석양의 마지막 빛이 들어와 작업실을 부드러운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리진 엄마의 작업실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유명한 작가다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큰 나무 책상은 고급스러운 감촉을 자랑했고, 책상 위에는 최신형 노트북과 중요한 서류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가 자주 사용하는 펜과 노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책상 한쪽에는 독특한 디자인의 데스크 램프가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책상 뒤쪽 벽에는 여러 개의 상장이 걸려 있어 엄마의 성공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엄마의 작품들이 진열된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책장에는 또한 엄마가 받은 트로피와 상패들도 진열되어 있어, 방문하는 이들에게 엄마의 명성을 실감하게 했다.


작업실 한쪽 구석에는 편안한 가죽 소파와 작은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화초와 최근 읽고 있는 책이 놓여 있어, 엄마가 잠시 쉬며 영감을 얻는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벽에는 엄마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일정을 정리한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그 위에는 다양한 컬러의 마커로 작성된 메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선반 위에는 엄마가 자주 참고하는 자료들과 중요한 문서들이 정돈되어 있었다.


리진은 작업실 한가운데 서서 엄마의 성취와 노력의 흔적이 담긴 이 공간을 바라보며, 엄마의 열정과 헌신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작업실은 단순한 일터를 넘어, 엄마의 꿈과 열정이 담긴 특별한 공간이었다.


리진은 엄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엄마, 이 책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라며 ‘미래서’를 내밀었다. 자애는 리진을 보자마자 그의 손에 들린 책을 보고 눈물이 글썽였다. 그 눈물은 마치 깊은 비밀을 품고 있는 사람의 눈물 같았다.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책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리진은 엄마에게서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깊은 숨을 내쉬며 리진에게 말했다. "이 책은 네 아버지가 남긴 거란다."


리진은 엄마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물었다. "엄마, 이 책이 어떻게 과거로 온 거예요? 그리고 아빠와 이 책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자애는 깊은 숨을 쉬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눈빛에는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비밀이 드러나는 듯한 무거움이 있었다.


"사실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야," 자애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차원의식이라는 존재가 관여했기 때문이지."


리진은 눈을 크게 뜨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혼란과 궁금증이 뒤섞여 있었다. "차원의식? 그게 뭐에요?"


자애는 책을 손에 쥔 채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책은 아주 오래 전, 차원의식이라고 불리는 신비한 존재에 의해 미래에서 가져온 물건이야. 그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적인 존재이지."


리진은 책의 낡은 표지를 바라보며 신비로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엄마, 차원의식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차원의식은 강력한 이념이나 감정에 의해 사람에게 깃들어 그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존재야." 자애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 아버지가 나에 대한 사랑과 나의 꿈을 이루고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강한 이념 때문일거야. 네 아버지는 죽기 전에 나와 그 당시 뱃속에 있는 너를 그리며 DI북 두 권을 만들었는데, 차원의식이 미래에서 네 아버지가 발명한 DI북을 과거로 가져온 거야. 지금 생각해도 이 모든 게 믿기지가 않아."


자애는 잠시 멈추었다가, 영실과의 어릴 적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네 아빠와 나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지. 이미 그때부터 운명 같은 게 있었을지도..."


자애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와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어. 우리는 과학과 자연, 그리고 독서에 관심이 많았지. 함께 별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이야기하고, 환경 보호에 대한 열정을 나누곤 했어. 중학교 때부터 우리는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탐구들을 시작했어.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어졌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우리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지.


대학생 시절, 네 아버지와 나는 폐기된 산업 지역에서 지하수를 조사하던 날, 우리는 심각한 오염을 발견했어. 그곳에서 방출된 독성 화학물질로 인해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된 것을 알게 되었지. 우리가 그 지역의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하던 중,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어. 지하에 누적된 독성 가스가 갑자기 폭발했거든. 그 폭발로 네 아버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결국 혼수상태에 빠졌지."


리진은 충격에 휩싸여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아빠는 어떻게 된 거예요?"


자애는 눈물이 눈가에 맺힌 채로 대답했다. "아빠가 혼수상태에 빠졌고 오래 버티지 못했어... 그런데 그때 차원의식이 그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모든 진실을 알려주었어. 차원의식이란 존재, 그리고 DI북에 관한 내용과 그 위치를 말해주었지. 이후 차원의식은 아빠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었어. 정확히 말하면, 차원의식은 불멸의 존재라서 언제가 다시 깨어날 수 있을 거야. 차원의식이 잠시 소멸된 이유는 물건이나 사람에게 두 번째로 깃들게 되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야. 나를 구하기 위해서 차원의식도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영실의 몸에 다시 들어갔는데 영실이 내가 죽는 미래를 보고 나 대신..."


잠시 침묵 후, 자애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차원의식은 미래에서 아빠가 만든 DI북의 일기를 보고 호기심에 과거로 왔어. 처음에는 과거의 아빠 몸속에서 나를 관찰하다가 아빠의 사랑에 동화되면서 사랑의 신비함과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거야. 그래서 내가 죽을 운명을 차원의식이 바꾼거지. 그런데 문제는 영실이 죽고 나면 DI북의 존재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고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차원의식의 실수로 죽었으니 모든 진실을 나에게 밝힐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DI북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


말하던 중 자애는 갑자기 말을 멈추며 DI북을 자세히 보더니 리진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어. DI북의 표지가 원래 ‘미래서’라고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예지의 서’로 바뀐 거지? 지금 보니까 형태도 바뀐 것 같은데?"


리진은 깊은 감동과 슬픔을 느끼며, 방금 자신이 DI북과 있었던 일을 모두 자애에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 그동안 DI북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와이파이 때문이었어요. 엄마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와이파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으니까요."


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런거였구나. 차원의식에 대해 한 가지 더 알려줄게. 이들은 지적 생명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인구가 많을수록 차원의식이 시공간을 이동하기가 수월해져. 인구가 1,000만 이하로 줄어들면 차원의식의 시간이동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고 해. 그런데 차원의식의 말에 의하면 2054년 이후의 시간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했어."


자애는 리진의 눈을 보고 말했다. "리진, 이제 모든 진실을 알았으니, 무엇을 할지 네가 결정해."


리진은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가 이 운명을 이끌어 갈게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세상을 구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낼거에요."


자애는 리진에게서 영실의 모습을 보며, "부전자전이구나! 고맙다 리진아, 원래는 이런 부담을 주기 싫었는데 운명이란 게 진짜 있나 봐."


리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엄마, 그런데 DI북이 두 권이라면 나머지 한 권은 어디에 있어요?"


자애는 답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DI북을 사용할 수가 없고, 그동안 DI북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잖아. 그래서 그 책을 DI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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