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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10화 @군화에 광이 나야 합니까

  군화. 다른 말로는 전투화라고 한다. 군인이라면 가장 자주 신게 되는 신발인데, 요즘은 등산복을 연상시키는 고프코어 룩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신발이다. 내가 군인이던 시절에는 전투화에 ‘광’을 내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었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게 되는 진지 공사를 마친 날 저녁에도, 깎여나간 잡초가 전투화 사이사이에 끼어 푸르딩딩해진 날에도, 비 오는 날 훈련을 마친 후 진흙투성이가 된 날에도 ‘어김없이’ 병사들은 전투화를 광이 나도록 닦아야만 했다. 물론 GOP로 들어간 후 밤낮이 바뀌는 극한의 근무 환경 속에서는 서로에게 관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매일 일과 시간과 개인 정비 시간이 규칙적으로 나누어져 있던 ‘페바’ 부대 시절에는 특히 광을 내는 문화가 중요시 여겨졌다. 선임들은 수시로 후임들의 전투화에 광이 나는지 검사했고, 광이 나도록 깨끗하게 전투화를 유지하지 못한 날에는 어김없이 내리 갈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 역시 종종 그 갈굼의 대상이 되었다. 보통 전투화를 닦는 시간은 청소를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가기 전 시간이었는데, 전투화에 광이 나도록 닦으려면 부모님이나 친구들한테 전화할 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점호가 끝나면 전화가 금지되었고, 부대 내 전화기의 수는 한정적이라 늘 전화 쟁탈 경쟁은 치열했다. 하루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이미 전화기 앞에는 부지런한 선임들이 전화기를 차지해 통화를 하고 있었고, 나는 수시로 전화기가 있던 1층을 오르내리며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간신히 전화기를 차지할 수 있었고, 약 10분 정도의 전화를 마치고 빠르게 샤워를 하러 다녀왔다. 그런데 시간 계산을 잘 못 했던 것인지 전투화를 닦을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고, 나는 빠르게 전투화 닦는 곳으로 달려가 쓱싹쓱싹 대충 문지르고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점호를 앞두고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안○섭 이병이 내 전투화를 발견하고 말했다.  

   

  “아주 전투화 꼬라지 좀 봐라. 야, 네가 전투화를 그따구로 닦으니까 후임 새*들도 대충 닦는 거 아니야. 후임 몇 명 들어왔다고 벌써 짬 좀 찼어? 어?” 나는 귀가 빨개지며 또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눈에 들어온 그의 전투화는 앞코가 번쩍번쩍 광이 났기 때문이다. 그땐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하나의 가설이지만, 안 이병이 ‘일부러’ 그날 전투화를 광이 나도록 손질한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본인의 전투화를 광이 나도록 닦았기 때문에, 후임들의 전투화를 보고 갈굴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자신의 물건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단체로 생활하는 공간의 청결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군인도 인간인데, ‘그날의 사정’ 같은 게 개인에게 있지 않았을까. 그냥 “내일은 전투화 깨끗하게 닦아.”라고 무심하게 얘기해줘도 다들 충분히 알아듣지 않았을까. 뭔가 전투화에 광을 내는 행위가 군기를 유지하고, 후임들을 ‘합법적으로’ 혼낼 수 있는 계기로 변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역한 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보니 전투화에 광을 내는 데에는 여러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 ‘마음 정리’ 측면이다. 전투화에 광을 내기 위해서는 우선 구둣솔로 전투화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흙이나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야 한다. 그 후 구두약을 바른 뒤 천으로 같은 방향으로 끝도 없이 돌려가며 문질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내가 결코 이상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그래도 결국 ‘오늘’이라는 하루를 잘 버텨낸 나 자신이 기특하다든지. 이런 다양한 생각들이 전투화 손질을 하며 머릿속에 떠올랐고, 전투화에 광을 내는 행위가 마음을 꽤 차분하게 정리해줄 수 있었다.


  둘째, ‘친목’ 측면이다. 보통 전투화는 같은 계급의 병사끼리 닦는다. 나 역시 이등병이었지만 후임들을 데리고 같이 내려가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 전투화를 닦았다. 가끔 나보다 선임들이 밑에 내려와서 함께 광을 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나눴던 대화가 퍽 위안이 되던 것 같다. 후임들과는 불합리하게 갈구는 선임들의 뒷담을 신나게 깔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때로는 마음이 따뜻한 선임들이 내려와서 오늘의 실수에 대해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서로를 토닥여줄 수 있는 친목의 시간. 그 시간에는 전투화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광이 나는 감정을 느꼈다. 동질감과 전우애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셋째, ‘정(情)’ 측면이다. 전투화에 ‘특히’ 더 광을 내는 날은 보통 휴가를 나가기 전날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꽤 감동적이었던 일화가 있었다. 나는 당시 부대 내 ‘관심병사’ 바로 직전 수준으로, 수많은 선임한테 수시로 샌드백처럼 털리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꿈에도 그리던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는데, 전날 내 분대 맞선임이던 지○훈 이병이(만약 다른 선임이었다면 미안하다. 솔직히 13년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전투화에 광을 내준 기억이 난다. 휴가 가기 전에는 맞선임이 맞후임의 전투화에 광을 내주는 ‘좋은’ 관행도 있었다. 심지어 2분대 안○섭 이병은 내 전투복을 직접 다려주기까지 했다. 마치 그동안 갈굼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서운하고 화가 났던 감정들은 눈 녹듯 녹았으며, 앞으로 나의 군 생활도 내 군화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게 아닐까 하고 ‘잠시’ 착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거의 일병이 되고도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일로 많은 갈굼을 받았으며 ‘군쪽이’ 오명을 벗기 위해 부단히도 고생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전역을 앞둔 전날, 전투화에 광을 내면서 나의 군 생활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던 경험이 있다. 항상 군화에 광이 날 필요는 없다. 다만 군화에 광을 내는 행위는, 어쩌면 자신의 다친 마음을 닦아주고, 더 나은 내일을 다짐하는 일종의 의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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