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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13화 @제가 과자 귀신입니까

  ‘과자 귀신’을 소개하기 위해 연등 얘기부터 해야겠다. 군대에는 연등(燃燈)이라는 게 있었다. 아마 지금도 있겠지만. 연등은 한국 군대 용어로, ‘군대에서 소등 시간 이후에 특별한 허가를 받아 점등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된 목적은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라곤 하지만, 대체로 생활관에서 밤늦게까지 TV를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었다. 군 생활에 몇 안 되는 낙이었다고나 할까.     


  연등은 주로 금요일과 토요일 밤 당직사관의 통제하에 약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루어진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도 특별히 주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생각하는 연등의 가장 큰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임과 후임 간 라포형성이다. 선·후임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군 생활 전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함께 휴가를 나가거나, 취미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특별한 유대감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연등’이라는 시간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K-2>였다. 당시 인기가 엄청났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생활관에서 시청했던 걸로 기억한다. TV를 보는 와중에도 소대별로 돌아가면서 ‘불침번’이라는 것을 서야 했는데, 주로 계급이 낮은 이등병이나 일병들 순서로 돌아가곤 했다. 기본적으로 연등에 상관없이 근무자는 성실하게 불침번을 서야 하지만, 이때만큼은 어느 정도 허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한참 TV를 보다가 뒤를 돌아보면 불침번 근무자가 돌아다니면서 TV를 함께 시청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되었다. 낮에 얼마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이 시간만큼은 사이가 불편한 선임과 후임이 한마음으로 좋아하는 참가자를 응원하고 떠들 수 있는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둘째, 야식이다. 연등 시간에는 평소 먹고 싶었던 야식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즉 사회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TV를 보며 라면을 먹는 게 가능했다는 말이다. 야식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음식은 당연히 라면이었다. 소대원들은 병장부터 이등병까지도 PX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라면과 소시지를 미리 사 놓고 연등을 준비한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조합은 ‘간짬뽕’ 컵라면과 ‘빅팜 소시지’의 조합. 물론 나는 이 환상의 조합을 자대배치 이후 1년은 지난, 2011년 상병 시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는 미리 사두었다가 연등이 시작되면 부지런히 뜨거운 물을 받으러 다녔다. 아마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경우, 연등과 함께했던 최애 음식은 라면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선호했던 간식은 바로 ‘과자’였다. 나는 연등이 시작되면 약 5~6가지 종류의 과자를 뜯어서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함께 과자를 먹고 싶은 선임들 사이에 앉아서 정말 ‘미친 듯이’ 과자를 흡입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주로 ‘썬칩, 감자깡, 고구마깡, 양파깡, 꿀꽈배기, 칸쵸, 씨리얼, 고래밥, 포테토칩, 프링글스’ 등등이었다. 나는 마치 칵테일을 블렌딩하듯 다양한 조합의 과자들을 섞었다. 선임들은 이미 라면을 먹는 중이었기 때문에 내 과자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입이 심심한 선임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느 날은 어떤 선임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 “야, 너는 라면 안 먹어? 왜 과자만 먹어?” 이 말을 들은 내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과자가 제일 좋습니다.” 물론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과자는 ‘먹기에’ 제일 좋았을 뿐이지, 나도 사실 선임들이 먹는 라면을 보면 침을 삼키곤 했다. 그런데 왜 나는 뜨끈한 라면 대신 퍽퍽한 과자들을 선호했던 걸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일단 나는 마음이 공허했었다. 과자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씹을 수 있었다. 봉지를 비울 때마다 일종의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눈은 TV를 향해 있고, 손은 계속해서 과자로 향한다. 입은 끊임없이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과자를 분해한다. 다양한 종류의 짭짤하고 달콤한 과자가 미각과 후각을 마비시킨다. TV를 바라보던 눈은 점점 퀭해졌지만, 꽤 행복하다고 느꼈다. 배가 다 차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충족되는 즐거움이었다고나 할까.


  또한 과자를 먹을 땐 다른 선임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작업에서 실수했다고 혼날 이유도 없었다. 과자를 먹는 행위에서는 적어도 ‘실수’할 일이 없었고, 난 소대 내 그 누구보다 과자를 많이, 그리고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내가 관물대에서 다양한 종류의 과자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선임들은 서서히 나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대체 어떤 과자가 나올까. 대체 얼마나 많은 과자 봉지를 뜯게 될까. 쟤는 왜 저렇게 과자를 많이 먹는 걸까. ‘과자 귀신’에 쓰인 게 아닐까. 기타 등등, 그들이 나에게 갖는 관심이 일종의 애정처럼 느껴졌고, 당시 실수투성이였던 나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포트기를 들고 물을 받으러 다니고 싶지 않았다. 보통 함께 라면을 먹게 되는 후임들은 선임과의 ‘라면 타임’을 갖기 위해 수시로 포트기에 물을 채워왔다. 물이 끓으면 선임부터 후임 순으로 라면에 물을 부었고, 소시지를 입으로 잘라 자기 라면에다 넣었다. 당시 심적으로 힘들었던 나에게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었다. 낮에도 작업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는데, 연등 시간조차 후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빠릿빠릿하게’ 포트기에 물을 채워오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저는 오늘 과자 먹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나는 포트기 업무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묵묵히, 차분하게 내가 사 놓은 과자를 하나씩 뜯을 뿐이었다.     


  사회에 나온 이후 내가 내 돈을 주고 과자를 사 먹은 일은 손에 꼽는다.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그 이유를 군 시절 ‘과자 귀신’으로 지냈던 경험에서 찾았다. 거의 모든 종류의 과자를 섭렵했었고, 늘 다 먹고 난 뒤의 과자 봉지를 편지 모양으로 고이 접어 버리던 기억이 있다. 군쪽이 타이틀을 내려놓지 못했던 이등병 시절 나는 ‘살기 위해’ 과자를 먹었고, 공허해졌던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해 과자를 내 몸에 때려 넣었던 것 같다. 물론 덕분에 여러 즐거운 에피소드도 생겼고, 선임들과 함께 과자를 먹으며 유대감을 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과자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먹지 않더라도 원만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과자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게 아닌가 싶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연등 시간에 과자를 쌓아두고 먹는 일’은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우리는 누구나 이처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나만의 돌파구, 나를 위로하기 위한 수단 하나쯤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군 생활을, 더 나아가 ‘삶’을 버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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