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등병 시절, 내가 살아갈 희망과 힘을 주던 후임들이 있었다. 그중 특히 나한테 큰 힘이 되어줬던 ‘김○진’ 이병이 생각난다. 부산 사나이라 그런지 사투리가 푹 끓인 돼지국밥처럼 구수한 동생이었다. 이 친구와 내가 어떤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린 자대배치 이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우리가 했던 비슷한 경험이란 사회에서의 인정과는 대조적인 ‘억까’를 당했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계급이 높아지고 둘이 같은 초소에 들어가서 근무를 선다거나, 함께 PX에서 냉동식품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사회에서 기다려주는 예쁜 여자친구도 있었고, 고향인 부산에서 꽤 알아주던 친구였다는 걸. 하지만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았었는지는 군인이 된 이후에는 중요하지 않다. 한 번 관심사병이나 특이한 놈으로 찍히면, 그 인식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렵다는 얘기다.
내 기억에 당시 나는 1분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 친구는 2분대였다. 당시 분대별로 ‘악마’를 담당하는 선임들이 있었다. 악마를 직역하면 ‘군기 담당’ 정도랄까. 1분대에는 윤○모 일병, 그 위로는 이○환 일병, 또 얼마 뒤 분대장을 맡게 된 박○길 상병. 그리고 2분대에는 안○섭 이병이 있었다. 사회인이 된 지금은 대부분 나와 가깝게 지내는 ‘전우’가 되었지만, 당시 이등병 때는 나의 끔찍한 군 생활에 많은 지분을 가진 인간들일 뿐이었다.
내가 각종 이유로 샌드백처럼 탈탈 털리고 있으면, 그 모습을 건너편에서 김○진 이병이 보고 있다. 그리고 김○진 이병이 갈굼을 받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그 모습을 본다. 어느새 우린 눈이 마주치고, 서로만 알 수 있는 신호를 눈으로 보낸다. 우리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는다. 그리고 이발실에서, 전투화를 닦을 때, 또는 같은 작업장에 보내져서 작업을 할 때 우린 참았던 웃음과 뒷담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었다. 어떤 대화를 나눴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밖에서 만났으면’이라는 말이 자주 앞에 붙었던 것 같다. 아끼는 후임과의 뒷담은 혼탁한 군 생활 속 방독면 같은 역할을 해줬다. 그때만이라도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뒤로도 강○록, 권○준, 전○우, 이○철, 김○환 등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는, 서로 위안이 되는 후임들이 생겼다. 그런 후임들이 늘어갈수록, 내가 선임들한테 갈굼을 받을 때 덜 힘들게 되었다. 덜 화나게 되었고, 나 자신이 덜 미워졌다. 오히려 악마 역할을 맡는 선임들이 아니라 나한테 마음을 열고 속내를 털어놓는 후임들이 많아졌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내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좋게 봐줬던 것 같다. 진심이 통했던 걸까.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군쪽이 생활이란 비좁은 틈으로 들어온 한 줄기 희망의 빛은 ‘아끼는 후임’이었다는 것이다. 선임이든 후임이든, 또는 동기든 간부든 간에, 군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옆에서 함께 뛰어주는 ‘귀인’을 우리는 찾아야만 한다. 인간은 죽을 때는 혼자지만,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의존’할 대상이 아닌, ‘의지’할 대상을 찾아야만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인생을 완주할 때까지 옆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