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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16화 @500원짜리 물집 잡혀봤습니까

  행군. 작전상 또는 훈련상의 요구에 따라 군대가 ‘차량이나 도보’에 의하여 한 지역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대체로 ‘도보’에 의해서 이동하기 마련이다. 본 글에서는 내가 경험했던 여러 행군 중 자대배치 이후 겪었던 ‘첫 실패 행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 나는 35년 만에 내 발이 편평발(평발)임을 알게 되었다. 평발은 발바닥의 안쪽 아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거나 소실되는 변형을 말하는데, ‘장시간 보행 및 운동 시’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즉 나는 툭하면 걷고, 뛰어야 하는 군대라는 시스템에서 시작부터 생리학적으로 맞지 않는 인간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나는 늘 행군 때 발바닥이 잘라질 것 같거나 불타오르는 통증을 느끼며 걸었다.     


  내가 아직 이등병일 때의 일이다. 내가 행군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실패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완전군장’을 한 상태였고, 당시 내가 들고 있던 총기는 K-3로 길이 1,030mm에 중량은 6.86kg의 무거운 총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무게가 62kg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던 나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무게였다. 오전에 출발한 행군은 어느덧 저녁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끊어질 것 같은 발의 통증을 견뎌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힘들 거야. 엄살 부리지 말자. 이거 하나 해내지 못하면, 나는 앞으로의 군 생활을 해낼 수 없어.’ 이런 생각을 곱씹으며 걸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쉬는 시간에 군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우선 바닥에 앉아 전투화를 벗고, 양말을 벗어 ‘물집’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발을 충분히 쉬게 해준다는 의미도 있었고, 건강 상태 확인 측면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내 발의 상태는 처참하게 망가져 갔다. 발 곳곳에 크고 작은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도 ‘누구나 똑같이 겪는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야간 행군이 시작되었다. 나는 자꾸만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의 통증으로 절뚝절뚝 걸었고, 총이 너무 무거워 어깨에 걸어야 할지,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때 윤○모 일병이 나한테 다가왔다. “야, 총 줘봐.” 이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날카롭기만 하던 인간이, 왜 내 총을 달라고 하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총은 목숨과도 같은 건데, 이 총을 그냥 건넸다가 또 욕먹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 상병은 방탄 헬멧을 쓰고 있는 내 머리를 살짝 때리면서 말했다. “끝까지 가야 할 거 아니야. 내 총이랑 바꿔줄게. 바꿔 들어. 나 예전에 K-3 들어봤어.” 그 말을 듣고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는 윤 상병의 배려로 약간 더 가벼운 총을 들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발의 통증은 여전했다. 활활 타오르는 땅을 맨발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절뚝절뚝. 어느덧 나는 거의 맨 뒤에서 걷고 있었다. 나보다 더 군번이 낮은 후임들도 씩씩하게 잘 걷고 있었다. 가끔 앞서가던 선임이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외쳤다. “야! 포기할 거냐! 지금 네 후임들 잘 걷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선임인데 쪽팔리지도 않냐! 빨리빨리 안 걷냐!” 이렇게 외쳤던 건 아마 이○환 일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내 의지를 끌어 올려주기 위했음이리라.     


  내 기억으론 새벽 2시쯤 부대 도착이 예정인 행군이었다. 꽤 많이 걸어야 했던 행군인 셈이다. 자정쯤에 ‘마지막’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때 내 분대장이었던 박○길 상병이 나한테 다가왔다. “야, 빨리 전투화 벗어봐. 아, 빨리!” 그는 내 둔한 움직임을 지적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전투화와 양말을 벗었다. 그때 나도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내 양쪽 발에는 피가 흥건한 물집이 잡혀 있었고, 특히 오른발이 심했다. 오른쪽 발바닥에는 동전 500원짜리보다도 커다란 물집이 잡혀, 발바닥의 가죽이 거의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이 모습을 본 박 상병이 말했다. “야, 그만해라. 너 부대로 복귀해.” 나는 마치 불합격을 통보받은 표정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게 해주십쇼.”라고 말했다. “야, 미친놈아! 가라면 그냥 가라고. 너 충분히 걸었으니까. 이 정도면 잘 걸은 거야.”라고 말하고 그는 중대장을 찾아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다른 후임들과 선임들이 앉아 있는 나에게 찾아와서 내 발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패잔병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분명 조롱과 비난이 내 귀에 꽂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들 “힘내라, 고생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등등 나를 위로해주고 각자 휴식하러 돌아갔다. 나는 박 상병의 부축을 받아 의무병이 타고 있던 차로 옮겨졌다. 그때 의무병의 말이 잊히질 않는다. 살면서 이렇게 심한 물집은 처음 본다고. 그는 소독한 주사기를 가져와서 내 발바닥에 꽂아 피고름을 뽑아냈다. 그때 느낀 통증보다, 끝까지 행군을 마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어느새 중대장과 박 상병이 내가 탄 차로 들어왔다. 내 물집을 보고는 “부대로 복귀해. 가서 푹 쉬고 있어.”라고 말하곤 떠났다. 중대장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다. 나는 마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것,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걷는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대체 내가 앞으로 무엇을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박 상병이 나한테 한 마디 덧붙이고 갔다.


 “야, 누구나 잘하는 게 다 다른 거야. 넌 할 만큼 했어. 그니까 가서 푹 쉬고 있어. 누가 네 발 가지고 뭐라 하면 나한테 말해라. 내가 다 죽여 버릴 거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굴욕감보다도 고마운 마음 때문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죄송합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병교육대대에서도 행군에서 포기했던 적은 없었다. 끝까지 완주했을 때 동기들과 함께 얼싸안고 환호를 지르던 그때가 떠올랐다. 이번 행군도 꽤 힘든 훈련 중 하나였기에, 훈련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쌓일 거라고 기대했었다. 늘 실수만 하는 ‘군쪽이’가 아닌, 끝까지 책임을 완수한 한 명의 든든한 ‘전우’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사라지고, 내 마음에 금이 간 것 같았다. 아니, 자존심에 금이 갔다고 해야 하나. 그때 내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이대로 부대에 돌아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라는 말. 나는 지금 이 위기 상황을 기회로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부대에 도착한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전투복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우선 내 군장부터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거즈가 감싸고 있는, 너덜너덜해진 발로는 전투화를 신을 수 없었기에 활동화로 갈아신고 ‘청소’를 시작했다. 우선 냉동실을 확인했다. 역시 물이 별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나는 눈에 보이는 페트병에 전부 물을 채우고, 냉동실 안에 집어넣었다. 1소대 생활관은 2개였기에, 나는 두 생활관을 모두 바닥부터 깨끗하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쓸고, 눈에 보이는 커다란 쓰레기들을 전부 휴지통에 넣었다. 그리고 대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닦고, 침상 위를 손걸레로 닦았다. 관물대 앞에 각지지 않은 선임들의 침상과 모포에 전부 각을 잡았다. 1시간쯤 지났을까. 그보다 더 지났는지도 모른다. 행군에서 부대원들이 복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대걸레를 ‘다시’ 잡고 바닥을 닦고 있었다. 그때 생활관 문이 열리고, 다들 얼굴이 파김치가 되어 들어왔다. “전진!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한 손에는 대걸레를 든 채, 가장 먼저 들어온 분대장한테 경례했다. 다른 소대원들도 청소하고 있던 내 모습을 봤다. “안 씻었냐?!” 누가 이렇게 물어봤다. “모두 돌아오시고 함께 씻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다들 말이 없었다. “야, 뭐해. 빨리 씻으러 가자. 아주 *같다, 찝찝해서.” 내 K-3를 대신 들어줬었던 윤○모 일병이 말했다. 그는 샤워에 진심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제야 전투복을 갈아입고, 씻으러 갈 준비를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였지만, 그날 나의 행동은 대다수의 마음에 드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끝까지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낙오’하여 부대에 복귀한 놈이, 혼자 샤워까지 마치고 누워서 쉬고 있었다면 어떤 욕을 먹었을까. 사람 심리란 이렇다. 몸이 아파서 먼저 복귀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이란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때 필요한 것이 ‘액션’이었다. 부대원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쉴 수 있도록 미리 청소하고 냉동실을 채워놓는 행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다가 넘어질 때가 있다. 넘어지고 싶어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넘어진 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갈 수도 있고, 낮은 시점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위기의 순간,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되는 곳이 군대, 더 나아가 사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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