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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17화 @휘발유, 마셔보셨습니까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기 위해 ‘예초기’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예초기는 소형 엔진을 이용해서 날을 회전시켜 풀을 베는 도구이다. ‘연료’에 따라 석유식, 가스식으로 나뉘고, 충전해서 사용하는 전기식도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군대에서의 여름은 ‘제초’의 계절이다. 제초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잡초를 제거하는 일.

  제초 작업 복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머리에 ‘수건’을 얹어서 땀을 흡수하도록 한다. ‘챙이 넓은 모자’를 써서 햇빛과 각종 돌멩이로부터 머리를 보호한다. 제초 작업 중 풀만 깎이는 것이 아니라 각종 돌과 모래가 튀어 오르기 때문에 ‘안면 보호대’도 필수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잡초로 가뜩이나 푸르딩딩한 전투복에 더 초록색 물이 들 수 있으므로, ‘앞치마’를 입는 것이 좋다. ‘목장갑’은 날카로운 잡초나 예초기의 날에서부터 손을 보호해준다. 마지막으로 ‘전투화’는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는 돌멩이로부터 발을 보호해준다.

  작업 복장을 갖추었으면 이제 예초기에 시동을 걸 차례다. 예초기의 초크레버를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리코일 스타트의 줄을 ‘부릉부릉’ 소리가 나도록 2~3회 당겨주며 급유를 한다. 그리고 줄을 당겨 걸리는 지점까지 살짝 당긴 다음, 마지막으로 힘차게 당겨주면 시동이 걸린다. 예초기의 진동은 무시무시하다. 마치 세상 모든 사물을 베어낼 것만 같은 위압감. 예초기를 들고 8자를 그리며 잡초를 깎다 보면 전완근이 뻐근해진다. 나중에 작업을 멈추고 쉬는 시간을 가질 땐 예초기 손잡이를 주로 잡고 있던 팔이 덜덜덜 계속해서 떨리게 된다.     

  군 생활에서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힘든 작업을 마치고 생활관에 복귀했을 때였다. 가져갔던 물은 이미 다 마신 상태였고, 나는 얼음물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냉동실을 열었는데 얼어있는 물이 하나도 없었다. 절망한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1.5L짜리 음료수 페트병이었다. 더위를 먹어서 그랬던 건지, 조심성이 부족했던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였던 것 같다. 나는 별 의심도 없이 음료수의 뚜껑을 열어 몇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바로 토악질이 올라왔다. 강력한 ‘휘발유’ 냄새가 입 안에서 진동했다. 그렇다. 나는 음료수 대신 ‘휘발유’를 마신 것이다.     


  소대는 발칵 뒤집혔다. “어떤 새끼가 휘발유를 냉장고 안에 집어넣었어?!” 어떤 선임이 길길이 화를 냈다. 선임들은 나한테 달려왔고, 그중 경상도 출신인 최○원 일병이 나를 부축해서 의무대로 데리고 내려갔다. 나는 내가 마신 게 무엇인지 의무병이 알아야 했기에, 그 와중에도 휘발유를 챙겨서 내려갔다. 의무병은 내가 마셨던 게 ‘예초기’에 들어가는 ‘휘발유’라는 것을 알았고, 물을 많이 마시게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휘발유를 삼킨 사람을 돕는 방법’이라는 글이 나온다. 누군가가 휘발유를 삼켰을 때 ‘구토를 유발하지 말라’는 글이 있다. 소량의 가솔린은 위장에 도달하면 거의 해를 끼치지 않지만, 몇 방울의 가솔린조차 폐로 흡입하면 심각한 호흡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구토는 사람이 휘발유를 폐로 흡입할 가능성을 증가시키므로 금지다. 나는 물로 입을 헹구고 물을 계속 마셨다. 우유는 몸이 휘발유를 더 빨리 흡수하게 할 수 있으므로 역시 금지다. 

    

  의무병은 주기적으로 나를 관찰했는데, 나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최○원 일병이 물었다. “야, 혹시 일부러 마신 거 아니지?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죽으면 안 된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선임이었던 최 일병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걱정하던 마음이 꽤 귀엽고 고마웠다. 나는 “실수로 마셨습니다. 절대 죽을 생각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그 뒤로도 몇 번 더 반복해서 말하게 된다. 의무대에 누워 있으니 여러 선임이 마치 교대라도 하듯 내려와서 내 상태를 살폈다. 한심하게 쳐다보면서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선임, 안 좋은 생각이라도 가졌던 게 아니냐고 물어보는 선임, 힘들면 휘발유 마시지 말고 그냥 힘들다고 말하라고 다독여주는 선임 등등. 그날은 본의 아니게 소대를 넘어, 중대의 스타가 되는 날이었다.      


  심지어 우리 소대의 부사관, 소대장, 그리고 중대장까지 나를 보러 내려왔다. 부대 내 괴롭힘은 없었는지, 누가 일부러 마시게 한 건 아닌지, 그리고 안 좋은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질문이 계속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편하게 쉬나 했는데, 그것은 알량한 착각이었다. 계속된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차라리 다시 분대로 복귀해서 청소나 샤워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죽을 생각은 ‘정말로’ 없었다. 사실 그 시절에도 잦은 실수는 반복되었고, 훈련이나 작업 중 갈굼을 받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정말로 죽을 마음은 없었다. 나를 무시하는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건강하게 전역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 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휘발유 따위 먹고 죽을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계속 의무대에 누워 있다가 복귀했다. 모두가 나를 걱정해주었고, 그로부터 며칠 동안은 갈굼 없이 지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나쁜 생각을 했다고 여기는 선임들이 있었으리라. 이틀 정도는 변에서도 일반적인 냄새가 아닌, 휘발유 냄새가 났다. 내가 먹는 음식들과 생각들이 곧 나를 구성하는구나 싶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아서, 전역 후에야 이 사실에 대해 말씀드렸다. 무사히 전역해서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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