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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Feb 20. 2023

세간살이 다이어트

때이른 벚꽃엔딩에 정리정돈

3월도 되기 전에 벚꽃엔딩으로 이어지는 봄기운이 여기저기 수선스럽다. P로부터 단문의 문자가 날아왔다.


음, 주말에 테헤란로... 도시에 사는 촌사람에게 그곳은 심리적으로 먼 곳이다. 테헤란로에서 IMF와 빅딜을 겪어냈다. 알만큼 아는 곳인데도 걸음 할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는 곳. 한 번씩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할 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적응이 안 되는 동네다.


P는 주방가전을 비롯해 그릇 컬렉터다. 넘쳐나는 그릇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집을 또 마련해야 한다고 할 만큼 그릇 사랑이 각별하다. 그런 P가 다른 곳도 아닌 리빙페어를 함께 가자고 한다. 맥시멀리스트인 P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리빙페어 동행만큼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단번에 거절은 그렇고 즉답을 피했다.


미니멀라이프와는 별개로 물건 구입에 신중한 편이다. 사람멀미만큼이나 꽉 찬 공간에 불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부리는' 속성이 생겨난다. 하다못해 청소라도 해줘야, 현상유지가 가능하니 말이다. 게다가 사연까지 갖게 되면 처분도 손쉽지 않아진다. 그러니 애초에 성가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살아가는 동안 그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 말이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의 이유를 살펴보면, 제때 감정 처리가 안된 채로 지지부진 끌어오다가 미련이란 핑계로 결정을 보류한 것들이더라. 그게 감정이든 물건이 됐든.  


생활에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은 늘 생겨나지만, 삶에 꼭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언제든 훌훌 털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1톤 트럭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세간살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작업방에 있는 것만 빼내도 1톤 트럭만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현재는 바람일 뿐이다.


예년 같았으면 4월 맞을 즈음에 할 일인데 올해는 좀 서둘러 정리할 물건을 추렸다. 물건을 비우는 기준은 1년, 그동안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따져본다. 엄마의 손때가 묻은 살림들로, 꼭 필요한 대여섯 가지 빼고는 내게는 대부분 처분해도 무방한 것들이다. 이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인부들을 구해서까지 비우기는 과하다 싶어서 상황 는 대로 조금씩 내다 버리려니 성에 안 찬다. 부피가 큰 것들은 아예 손도 못돼서 버리는 물건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 보니 시원하게 공간을 비워 내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할 만한 옷가지와 물품을 골라놓고, 그나마 옮기기 쉬운 물건들은, 폐가전과 폐기물 수거업체에 접수해 뒀다. 아직 박스도 뜯지 않은 그릇세트들도 있다. 다락방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박스들에 개봉도 안 한 물건들까지 이것저것 잔뜩 쌓여있다. 이상한 일이다. 버린다고 버리는 데도 또 버릴 게 나온다. 이 집안에 제 역할을 찾지 못한 물건들이 얼마나 더 쟁여져 있는 건지 의문스럽다.


따뜻한 봄, 햇살 좋은 날 잡아서 다락방을 개방해야겠다. 혹시라도 친구들이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챙겨가라 하고, 나머지는 지역 당근 마켓에 올리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현재로서는 1톤 트럭은 꿈같은 얘기지만, 노력은 해 볼 만하다.


바람이 불긴해도 햇살이 좋다. 블루투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때이른 벚꽃엔딩이 경쾌하다. 청소기 소음도 묻히고,,,  4월 어느 봄날 같다.




#미니멀라이프  #비우며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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