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를 했다. 화장실 바닥이며 변기 구석구석, 주방은 물론이고 냉장고 안 찬이며 밥통까지 집안 여기저기 버릴 거 버리고 쓸고 닦고, 빨래까지 마무리했다.
외출 전에 집안 정리 정돈은 필수다. 더구나 하루 이상 집을 비울 땐 대청소를 한다. 혼자 생활을 하게 된 후 갖게 된 습관이랄까, 아니면 나만의 의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그 어디쯤이 될 것 같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만약의 사태를 염두에 둔 사전관리쯤. 누군가 나를 대신해 집안에 들어왔을 때 민망한 꼴은 보이고 싶지 않은 뭐어 ... 이,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다. 가뜩이나 어깨며 팔이 만신창인데 오늘까지 양팔을 혹사했다는 얘기를 하려다... 암튼 생각 많은 주인 만난 죄로 몸이 고되다.
장마가 본격적 시작을 알리고 있다. 텃밭 쌈 채소들은 끝물이다. 장맛비로 곤죽이 되기 전에 그나마 성한 상태일 때 웬만큼 뜯었다. 먹을 만하게 자란 가지며 풋고추와 오이, 호박도 나눔 꾸러미에 껴 넣었다. 집을 비우는 며칠, 비 예보로 텃밭에 물을 줘야 하는 부담은 덜었는데, 집사 없는 노후한 집이 폭우에 안녕할지 그게 걱정이다. (걱정이 풍년인 성격은 때때로 걸림돌이다. 오늘도 여럿 뽑아 쳤다. )
정리된 집안을 들러본다. 있을 자리엔 놓여있는 물건들이 안심된다. 한가람미술관에 갔다가 Artish 숍에서 구입한, 에바 알머슨 그림의 발매트가 유난히 눈에 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에 첫 발을 내딛는 그곳에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흑백인 집안에 유일한 컬러처럼 생뚱맞게 보인다.
집안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인, 색감이 화려한 그녀의 그림이 유난히 튄다. 꽃과 나비로 굵은 파마를 한 듯 머리를 온통 꽃으로 뒤집어쓴, 얼굴 동그란 여인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감은 눈매만 봐도 행복함이 충만해 보인다. 입꼬리는 귀에 걸리기 일보 직전에 콧구멍은 살짝 벌렁거리는 것도 (내 보기에..)
무채색에 익숙한 나로서는 화려한 색은 봐도 봐도 낯설고 생경하다. 취향의 문제다. 애초 그걸 사려던 건 아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뭐에 씐 듯 잠깐의 갈등도 없이 이미 결재를 해버렸다. 평소에 물건을 쉽게 사지도, 충동구매도 않는 내가 말이다. 사놓고도 한동안은 매트를 건너 다녔다. 여인의 행복한 얼굴을 밟으려니 맘이 불편했다. ' 이봐! 용도가 발매트라고... 그저 발! 매 뜨으!! 이럴 거면 차라리 벽걸이 그림을 사지 그랬써! ' 얼마 동안 바닥에 붙은 그림으로만 대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용도를 제대로 찾았다.
이제는 발매트를 밟고 지날 때면 웃음 버튼을 누른 듯 씨익 웃곤 한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내게로 옮겨온 듯 그렇게 한 번씩 웃는다. 맨발에 닿는 매트의 촉감도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만큼이나 보드랍다.
집안의 모든 게, ' 컴백홈 ' 돌아올 나를 맞을 준비가 끝났다. 그럼 이만,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만의 의식 #Artish shop #Eva Armi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