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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Oct 07. 2023

희끗한 머리에 구멍 난 청바지

시월 들어서 헤어숍에 다녀왔다. 머리가 깡총한 게 가볍고 상쾌하다. 한 달에 한 번 짧게 치는 보브컷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헤어스타일이다. 엄마가 계실 때만 해도 새치 염색을 했었지만, 엄마가 떠나시고 난 후로는 염색은 하지 않는다. 대소변을 받기 전까지, 엄마는 걷기 불편한 상태에서도 때마다 파머에 염색까지 하셨더랬다. 그런 엄마 앞에서 희끗한 두발을 날리며 다닐 수 없어서 염색을 했던 것이지, 그런 이유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자연스럽게 살았을 다. 혹여라도 고명딸의 희끗한 머리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하실까 싶어서 나름 엄마를 배려한 이었다. 새치가 나오면서(많아지면서) 머릿결이 좀 뻣뻣해지긴 했지만,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눈에 익어서 그런지 내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


희끗한 머리, 구멍 난 청바지에 스니커즈. 오십 중반에 옷차림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계셨으면 한소리 하셨을 게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내 옷차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청구를 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런데 오늘, 동년배인 헤어숍 원장이 웃으며 뼈 있는 말을 했다. 내 찢어진 청바지를 가리키며, 춥지 않냐며 기워야겠다고 했다. 요즘은 가까운 윗동네 노쓰~ 코리아에서조차도 그런 아재스러운 말은 안 할 텐데... 10년 넘게 다닌 미용실만 아니었으면 대꾸도 안 했을 것이다. 해말간 웃음으로, 기울 것 같았으면 애초에 해진 청바지를 왜 입었겠냐고 응수했다. 그녀의 스타일은 나와는 영 딴판이지만, 원장의 가위질만큼은 꽤 괜찮은 편이다. 나이가 지긋해진 그때에도 그녀의 헤어숍을 이용한다면 이따금 내게 한 마디씩 할 게 분명하다. ( 그때는 술도 한잔 하는 사이가 될지도...)


그녀뿐만 아니다. 주변을 들러보면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전의 스타일을 고수하기에는 바뀐 몸이 피로감을 느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로 보이는 것은 남들 시선과 사회통념 때문에 나이에 걸맞은 차림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 접점에서 그래 보이는 건 아닐까 싶다.


특별히 TPO를 갖춰야 하는 자리 말고는, 뭘 입든 안 본 눈 사고 싶을 정도만 아니라면( 이마저도 본인의 선택이지만) 남들 시선 때문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난, 어느 한 시절에 해보지 못한 차림으로 편하게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노래도, 드라마도 역주행인 시대인데 내 시절로 역주행이라고 안 될 게 있겠나. 머리는 자연스럽게, 차림은 내 꼴리는 대로! (팬데믹 때도 그랬듯, 언밸런스도 적응하기 나름이다.^^;;)


옷차림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 구구절절했다. 타인의 시선이 어쨌든 오늘도 ' 내 꼴리는 대로! '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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