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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17. 2023

어쩌다 독신으로 삽니다.

외로움은 부록입니다.

중년에 미혼, 독신이라고 하면

찰나 어색함, 한 호흡 느린 반응들

예상되는 리액션의 수순이다.


앞에 있는 이 중년의 독신녀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마땅한 말을 찾고 있으리라. 어떤 그룹에서든 잠깐의 침묵조차 참기 어려워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곧, 날아들 다채로운 반응들을 느긋하게 지켜볼 차례다.



20대 때, 친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네가 제일 빨리 시집갈 거라고 했었다. 나도 모르는 내 앞날에 대해 선무당처럼 점을 치고는 했다. 친구들의 그만한 추측엔 내 부모님의 유난스러운 행보가 한몫했었다.


늦게 나를 보신대다가 부모님 연세까지 높으셔서 당신들 건강할 때, 하루라도 빨리 고명딸이 출가하기를 원하셨다. 그래 마음이 급하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결혼에는 도통 관심 없는 딸년을 대신해서 주말마다 선 자리를 만드셨을 거다. 당시에는 토요일에 오전 근무를 했었다. 평일과 다르게 토요일만큼은 사내에서도 캐주얼 복장을 허용했었는데,  퇴근 후 선 자리에 앉아야 하는 나로서는 평일 착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정을 꿰고 있는 가까운 친구들의 추측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는 그림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알다시피 결과는 부모님 뜻대로 친구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그런 부모님의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 혼자다.

부모님은 떠나셨고, 나는 중년의 고아로 이 오래된 집에 혼자 남았다.

그 말 많던 친구들은 시집을 가서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 중에 둘은 이미 사회에 진출해서 친구에게 용돈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난 여전히, 독신이다.  

(이쯤에 쓸쓸한 서정이 물씬 풍기는 짧은 인트로라도 하나 깔아~ 줘야 제맛인데...)


사실 말이지,

이렇다 할 사연 없이도 독신이 되는 건 어렵지 않다.

어쩌다 어른이 되는 것처럼 어쩌다 독신이 되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저 난 누군가와 함께 삶을 도모하고 감당하는 게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새롭게 갖게 될 여러 호칭과 역할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뜨거워지기도 전에, 묵묵히 견뎌내야 할 관계들 그 생각만으로 피곤해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관계 피로의 총집합이 결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나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찌 살지 정하는 일생의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저 부모님의 염려가 무엇인지 알기에 최소한 시늉은 보여야 했을 뿐.


핏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내 역할과 책임은 져야 했다. 그 와중에 내가 만든 피붙이가 없다는 것에 안심했다. 애당초 없는 자식에게 짐이 될 일은 없으니,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반세기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육친에게 다 몰아 썼으면 내 할 도리는 한 셈이다. 그렇다고 후회가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몇 년 전 엄마의 병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잘 해낼 자신은 없다. 이제야 겨우 숨 쉴 수 있게 됐다. 이 쾌적함을 미안해하지는 않으련다.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지금, 또 새로운 끈을 만들어 성가신 일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다.



언젠가, 모임에서 언니뻘인 이가 넌지시 내 내밀한 사정이라도 안다는 듯 말을 건넸다.

" 너무 그렇게 선 긋지 말고, 좋은 사람이니 편하게 만나보라는 거지. 그럼 덜 외롭고 좋잖아? "

마치 짠 듯, 주변까지 그 말에 동조하면서 갑자기 그들 사이에 생기가 돌았다.

유쾌한 티타임, 그녀들의 도마 위에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상하게도 웃음이 터지더라.

중년 여자들의 장난기 가득한 엉큼한 눈빛 하며 잔뜩 올라간 입꼬리가 재밌어서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피곤하고 불쾌했을 반응에

뭐어 여전히 편하지는 않지만, 전과 다르게 웃으며 받아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외로움은, 내가 선택한 길에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안다.

반면 오랫동안 기다려온 홀가분한 선물이기도 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눈이 내리고 있다. 잠깐 나가 걸어야겠다.

잠시 나의 외로움이 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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