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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17. 2023

한겨울 소울푸드

요린이들 잘 들어!

안녕할 땐, 내 안녕에 대해 별 주의를 기울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수상쩍은 몸의 신호가 감지될 땐,  새삼 혼자라는 생각과 함께 한층 예민해질 때가 있다. 나이만큼 사용한 몸의 기관들이 솔직해지는 시간. 생의 자연스러운 증상일 텐데도 염려가 따라붙으면 확인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몇 가지 검사를 받기로 했다. 헌데 병원 측에서 보호자 동행 없이는 검사가 불가하단다. (몇 해 전 수면 검사 후, 보호자 없이 혼자 귀가하던 길에 불행한 사고가 있었던 병원이다.)


‘ 보호자가 따라붙는’ 이런 일에 맞닥뜨리게 되면 별수 없이 생각이 많아진다. 평소에는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새삼 독신이란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보호자까지는 아니어도, 동행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더구나 병원 동행은 누구에게 하든 어려운 부탁이다.


1인 가구라면 비슷한 경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들 말이다. 부탁을 받은 상대가 망설임 없이 흔쾌히 ok 해주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상대와 자신을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한 걸 후회하게 될 게 분명하다. 가벼운 부탁조차 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실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할 뿐이다. 어렵게 꺼낸 부탁을 거절할 사람들이 아닌데도 하지 않는 것은, 주변에 폐 끼치는 독신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다. 세상 나약하게 상황마다 주변에 칭얼대는 독신자, 그런 나를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덤덤하게 뻗대도 생로병사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노후한 몸이 지금의 생각과 의지를 배신하리란 걸 안다. 이미 세상 떠난 부모님이 오랜 시간 내게 보여주셨기에 알고도 남음이다. 아아,,,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곤란한데... 다른 생각들까지 치고 올라오기 전에 딴짓으로 몸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8282

그랫, 그때는 그때의 일이고 -


일단, 식사부터 하자! 배가 든든하면 기분도 풀릴 거야. 따뜻한 밥부터 챙겨 먹자.

오늘은 뜨끈뜨끈한 국물이 있으면 좋겠다. 뭐가 좋을까?

그랫! 한겨울이면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되비지찌개 그거 좋겠다.  

" 오늘은  되비지찌개! "

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저녁에, 엄마표 되비지찌개 한 그릇이면 한낮에 짜증 폭발했던 일도, 뾰족했던 맘도 푸근해지는 게 스르르 풀리곤 했었는데... 그렇게 되비지찌개는 엄마표 한겨울 소울푸드 중 하나였다. 엄마의 그 맛을 온전히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도 걱정은 안 한다. 죽은 음식도 살린다는 마법의 가루, 혹시 몰라 항상 준비를 해두기는 하는데 오늘은 사용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묵은지가 필요해서 시기적으로 살짝 이른 감이 있지만, 다행히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신 묵은지가 있으니 해 볼 만하겠다.


먼저, 기본양념에 새우젓으로 간한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양념이 잘 배도록 버무린 후 잠시 둔다. 그 사이에 불린 콩을 믹서에 곱게 갈아 놓으면 오늘 요리의 80%는 끝난 셈이다. 참고로 해콩은 물에 오래 불리지 않아도 쉽게 껍질 제거가 되지만 묵은 콩은 최소한 하루 전에 물에 담가둬야 한다.



병원동행 건은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 요즘은 그런 서비스도 찾아보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며칠 후에 일은 며칠 후로 깔끔하게 던져두고, 오늘을 즐겁게!!



요리 중요 포인트!!

비지가 끓을 기미가 보이면 불 앞에 딱!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명심해라! 비지가 끓어 넘치는 건 한순간이다.

까닥 방심하고 딴 일을 보았다가는 일순간 후루룩 끓어 넘치는 비지를 막을 수 없어 속수무책, 황망할 것이다.

(끓어 넘친 비지 분화구는 참담하고, 주변 청소는 덤이다.)


다시 말한다.

뭣보다 준비된 자세! 이게 중요하다.

(실제 해보면 내 말이 '뻥'이 아니란 걸 알게 되겠지만, 뭐어 실수만큼 확실한 학습이 없기는 하다.)


그 자세로 비지가 끓어 넘치기 직전에!

뽀얀 비지 위에 살짝 얹는다는 느낌으로 양념한 재료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아야 한다.

끓어 넘칠까 봐 성급하게, 마치 적진에 포탄을 내리꽂듯이 양념한 재료를 우르르 쏟아붓거나 휘저어서는 절대 안 된다. 비지가 금방 삭아서 비지 특유의 풍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게다 비주얼 폭망!!!!! 아흐으;;;;


뭣보다 엄마표 되비지찌개는 뽀얗고 빨갛고 그 경계가 있어줘야 한다. 그래야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기 때문이다. (사 먹는 되비지찌개는 허여멀겋거나 또는 상스럽게도 김칫국처럼 뻘겋게 나오더라만...)


그렇게 한소끔 끓인 후에 불을 끄고 그 모양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국자로 땀방땀방(엄마식 표현) 그릇에 떠 담아야 모양도 예쁘고 풍미도 좋다.


잊지 마라!

비지가 끓어 넘치는 건 한순간이다!!


#되비지찌개 #소울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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