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로부터 포메라니안 2개월 된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애써 거절했다. 친구는 눈치도 없지. 그 콩알만 한 놈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재차 늘어지게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 말끝에 한 번 와서 보기라도 하라며 맘을 또 술렁이게 했다.
나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강아지 집사였다. 만 16년이란 시간이다. 녀석을 보낸 후에도 오랫동안 녀석은 내 공간에 함께 있었다.
슬픔을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나이 들어서 방법이 없었다. 고스란히 겪어내는 수밖에는. 녀석과 함께 한 장소 곳곳에서 시시각각 느닷없이 튀어나오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눈가가 젖을 정도로 맘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런 내 상태를 아는 친구는 강아지를 분양받길 권했다. 그런 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또 같은 이별을 겪어 낼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도 애써 외면 중이다.
녀석을 보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새로운 녀석을 맞을 수 없는 내가 안타깝다. 하지만, 내게 올 녀석을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 손에 의지해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생명이란 점에서 난 부적합한 보호자가 맞다. 내가 돌볼 수 없는, 혹시 모를 그 시간에 혼자 남겨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학대니 말이다. 말 못 하는 녀석이 느낄 절망감을 생각만 해도 맘이 저리고 아프다.
녀석이 있을 당시만 해도 엄마가 계셨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물론 1인 가구라고 해서 다 나 같은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앞서간 녀석을 통해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마음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란 것을 안다. 이쁘니가 떠나기 전 4년여의 시간은 한 번의 수술과 약의 힘으로 산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병중에 있었던 엄마의 시간과도 겹치는 시기였다. 가수면 상태에서 두 생명을 돌봐야 하는 날은, 고되고 어떨 땐 가혹하다 싶을 때마저 있었다. 아픈 녀석을 집에 혼자 남겨두고 이른 새벽 엄마를 모시고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도 잦았다. 몸은 병원에 있어도 맘은 병원과 집을 오가야 했던 힘든 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을 비운 사이에 녀석 혼자 쓸쓸하게 떠나면 어쩌나,,, 이쪽저쪽 어디 중간쯤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내 처지가 딱 그랬다. 그 이후로는 눈 마주치고 교감할 수 있는 생명은 집에 들이지 못하게 됐다.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녀석의 시간을 알기에 말이다.
녀석의 모습이 선연하다. 거실에 잠자리를 봐주고 침실에 들어오면 어느새 일어나 방문 틈으로 빼꼼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 사랑스러운 눈길, 결국은 그 애처로운 눈길에 맘이 약해져서 침대에서 재우곤 했었다. 말을 어찌나 찰떡같이 알아듣던 녀석이었는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면 잔망스럽게 발닦개에 발을 닦고는 후다닥 내게 달려왔었다. 그리고는 똥꼬를 닦아 달라는 듯 꼬리를 한껏 올리고는 똥꼬를 보여줬었다.
" 이쁘니! 그쯤 나이 먹었으면 니 똥꼬는 네가 닦아야 하는 거 아니야? "
한 소리하면 얼른 뛰어가서 휴지를 물어다 내 앞에 놓고는 다시 똥꼬를 들이댔다. 이쯤 되면 이 녀석이 사람이 아닐까 싶은 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똥을 싸고도 칭찬을 받는 생명이 얼마나 될까. 반려동물과 교감이 특별한 집사라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아버지 계시는 곳, 벚꽃이 한창일 때 꽃잎이 날리는 그곳에 이쁘니를 보냈다. 녀석이 읽지도 못할 편지와 평소에 이쁘니까 좋아했던 장난감과 함께,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이지 그때 알았다. 녀석을 거기 묻고 오는데, 돌아오는 내내 차 뒤꽁무니를 따라붙어 왔다. 그 눈길이
지금도 그립고,,, 또 그립다. 사랑한다 우리 이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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