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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Jul 12. 2024

토닥토닥, 지나온 곳을 보면

24.06.25. 카페에서

 부산에 일주일 동안 와있기로 했다. 아버지가 지내는 집에서 며칠 지내면서 바다도 보고 도서관도 가보고 예전에 다니던 미용실에도 다녀오려 한다. 어릴 적부터 부산에 살았는데, 오랫동안 살았던 곳에 다시 오니 마음이 반갑고 두근거린다. 특히 법원 앞의 예전 학원 앞을 지나니 그리움이 스민다.

 대구와 부산을 자주 오가다 보니 자취방을 동대구역 근처로 옮겨 버리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다니기 불편했지만 가까운 곳에 역이 있으니 부산에 갈 때는 편했다. 오늘은 지내던 곳을 돌아보는 일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지난 공간을 보면 나는 그곳에서 지내던 때의 날씨나 향기, 소리가 떠오른다. 비가 오는 날 건물 입구에서 데리러 올 엄마를 기다리며 보았던 학원 근처의 나무 냄새나, 들어가려고 걸어오면 저 멀리서부터 들리던 악기 소리, 자취방 1층에 있던 카페에서 먹먹한 공기를 타고나는 커피 향이 기억난다. 공간이 주는 기억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만큼이나 또렷하다. 그곳에서 했었던 공부나 일만큼이나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는 장소는 지난 일을 다시 상기하는 기분의 향수를 준다.

 그중 가장 그리운 곳은 지난 자취방이다. 졸업을 하고 밀양으로 이사 온 부모님을 따라오게 되었는데, 나는 지난 자취방을 떠나기 싫어 자취방 정리를 이삿짐센터에 맡기지 않고 내가 전부 하겠다며 일주일이 넘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 짐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고 있으려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고생이 많았던 것 같아 조금 우습다. 그곳을 떠나오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만큼 잘 지냈다는 기억이 있어 그런 것 같아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했다. 그곳 큰 창으로 들어오던 흐린 햇살을 기억한다. 그 빛에 파묻혀 책을 한 장 두 장 넘기면 조용히 밀려오던 고요 속의 나른함을 사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면 이리저리 메인 전깃줄 사이로 보이던 작은 하늘도, 매일 그 창 앞의 책상에 앉아 확인하던 하루의 일상도 나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좋아하던 곳을 떠나오니 향수법처럼 지난 몇 달을 조금 슬프게 보냈는데 부산에 오니 이곳에서도 추억이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다니던 미용실에 가면서 산책을 자주 가던 공원을 지나왔다. 그곳에서 재활 운동 삼아 걷기도 하고, 다리가 다 낫고 나서는 시간이 나면 산책을 다녀오던 곳이라 내게는 그곳에 대한 향수가 일었다. 조금 걷다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남지 않아서 다시 돌아보고 오지는 못했다.

 나무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는 공원 입구를 따라 조금 걸으면, 물이 얕게 채워져 있는 거울 연못이 나온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연못은 건너가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늘이 모두 담겨 있어서 보기 예뻤다.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해질 시간 즈음에 하늘이 모두 내다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가려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기어이 해가 붉게 지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곤 했다.

 공간이 사람의 일상에 꽤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감회가 크다. 공원을 돌면서 했던 생각들이나, 힘든 일을 버티고 있었던 추억들이 조금씩 내 마음에 떠오른다.

 해 질 녘 공원을 걸어가면서 요즘 연습하는 노래가 꽃이 가득 핀 벚나무를 닮아있다고 생각했었다. 지는 해가 가장 붉은 때는 일 년 중 제일 더운 여름이었다. 후끈한 공기를 들이쉬면서 일부러 힘을 내어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하늘이 전부 내다 보이는 곳에 앉아 나는 언젠가 한쪽 발을 절면서 이곳을 돌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발이 약간 까지는 정도구나, 하며 조금 슬프게 웃었다. 그 여름 저녁 시간의 기억은 내게 아직도 또렷하다. 그렇게 지냈던 곳은 지금 나무들이 더 많이 자라 울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운 곳이 주는 마음은 그만큼 크게 와닿는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도 그런 그리움이 깃들 거라 생각하면 그 공간이 조금은 좋아진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을 많이 싫어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집에 들어온 직후에는 책 쌓을 곳도 석연치 않은 그곳을 불편해했다. 이제는 그곳에서 비치는 아침 햇살에 적응하는 중이다. 커튼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조금 더 친하게 지내보는 노력이 언제든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은 같은  곳에 살고 있더라도 각자 다른 곳을 보게 된다. 어느 곳을 보고, 어떻게 마음을 내어줄지는 모두 자신이 결정하는 요소다. 기분 좋은 곳에 살고 있지 않다면 그곳을 내가 살아 지내는 공간으로 꾸며보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꼭 내게 하는 말 같지만 그렇다.

 내가 사는 곳에도 그 공원과 같은 해가 진다. 그런 풍경을 보면서 앉아 하루를 조용히 정리하는 일도 좋았다. 언젠가 지낼 곳도 그런 풍경을 내어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기분 좋은 장면을 내어 주는 곳을 만들어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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