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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Sep 16. 2024

기다리는 중이다.

24.01.01 반짝이는 불빛 아래서

 새해가 밝았다. 올해라고 부르던 시간들은 지나가고 매일 쓰던 일기의 날짜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내가 그리워하던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고 다시 오지 않을 사랑했던 순간들도 마음속 그 자리에 있다. 올해에는 취직을 하겠다고 마음먹어두고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멍하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잘할 자신이 없다. 다음 주에 있을 시립 오디션은 준비가 더디게 되고 있고, 오늘은 악기를 불 힘도 뭣도 없고, 이런저런 기다림은 너무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다 지친 사람처럼 새해 첫날부터 힘없이 지냈다.

 굿윌헌팅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다. 밥 먹을 때마다 조금씩 영화를 보는 게 습관인데, 야금야금 보는 영화가 좀 아프다. 윌이라는 천재 소년의 이야기인데 그 주인공 윌이 도망치듯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세계에서 몇 명만 풀었다는 문제를 쉽게 풀어버리는 윌, 재미로 물리학 공부를 했던 윌, 그렇지만 자신이 살던 세계가 좋다며 학교보다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윌. 아직 영화를 다 보지 못해서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저 상처가 많았던 윌을 응원할 뿐이다. 윌은 교수와의 상담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
윌은 풀밭에서 양을 치는 양치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재능을 가진 아이는 양치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윌을 보면 여기저기 많이 다쳐서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웅크린 상처 투성이 어린아이가 생각난다.

 영화에서 교수가 윌에게 묻는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 윌은 답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버린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 실은 나도 답하지 못한다.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은 것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대금 연습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혼자서 음악 듣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가끔, 어쩌면 아주 자주 쓰는 사람. 이게 나다. 여러 문장을 덧대고 덧대어 겨우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나야. 사실 모두가 이런 모양새이지 않을까.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한두 문장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벅찬 질문이다.

 모두가 바라는 삶이 있다. 각자만의 삶이 있겠지만 그런 여러 인생이 당연해지거나 빛나지 않는다고는 말 못 하겠다. 언젠가 강변에서 산책하던 길에 앉아 봤던 광경이 있다. 높은 건물의 빛들. 작은 빛들이 여러 개가 모여 보기 좋은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저 작은 빛 하나는 누구의 시간일까. 저 옆의 동떨어져 있음에도 불이 켜진 방은 누구의 방인가. 우리는 모두 무엇을 열심히 하고 있나.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무릎을 모으고 앉아 눈을 떼지 못했다. 그저 빛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빛이 없는 밤에 사람들이 빛을 만들어 달아 두었다. 만들어 달아 둔 빛은 달빛이 아니지만 빛이다. 그렇게 모두가 그 빛과 함께 살아간다.

 새해인데, 나는 혼자 글을 쓰고 있고 연습하러 갈 내일을 기다린다. 잘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 무서워진다. 그 힘없고 간절한 말이 많이 두려워진다. 모두가 바라는 삶이 있다.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면 내가 기다리는 삶도 빛을 내는 것만 같다. 모두가 바라는 대로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누구나 바라는 삶이 있다. 그렇게 좇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삶이다.

 언젠가 시험공부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 책상 앞에 적어둔 문장이 있다. "기다리는 중이다." 무던히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소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모양이다. 오늘도 조용히 기다리지 못하고 끙끙대며 앓고 말았다.

 잘 지낼 것. 하고 싶은 거 다 할 것.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 달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할 자신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부단히 노력하면 그만이라고도. 잘 지내자.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기다리는 중이다. 부단히 연습하고 쓰고 읽어가며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는데, 책상 앞에 붙은 지 꽤 오래된 종이가 내 마음인 듯 조금은 쓰리고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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