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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r 29. 2024

저 곳은 왜 푸른가

24.01.22. 느린 저녁

 저녁 내내 잠을 한숨도 못자고 누워서 끙끙대다 아침 아홉시에 겨우 일어나 연습실에 다녀왔다. 밤새 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에 묶여서 지나가지도 못한 채 떠다녀서 졸려 미치는 표정으로 버스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연습실에 들어가는 길에 골목을 따라 걸으면 낮은 건물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날이 흐려서 젖은 색으로 보이는 하늘이 가만히 서 있다. 그러면 나는 악기를 메고 그 자리에 가만한 하늘을 보면서 고개를 조금 꺾고 아무 생각 없이 연습실로 걸어 들어간다.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오디션을 치러 다니려니 두려웠다. 너무 갑갑해서 하루는 꿈에서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나와 '언니야, 주춤주춤하는 중이다' 라며 알려주고 갔다. 무슨 강아지가 저런 말을 하나 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어서 차라리 위로로 삼았다. 저번에 올린 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그만'이라고 써두었는데 그 글이 힘이 되다가도 처음 쳐본 시립악단 오디션에서 떨어지고나니 다시 괴로웠다.


 연습이 늘 지겹다고 하지만 아침 연습하러 갈 때에는 꼭 들떠서 조금 신나게 걸어갔다가 저녁에는 연습실에서 지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들떴던 마음을 조금 내려두고 온다. 반복되는 연습을 하다보면 몇시간 후에는 물먹은 솜 마냥 축 처져서 돌아온다. 조금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오늘은 잠도 못자고 다녀온 거라 더 지쳤다.


 울적하다가도 이리저리 걷고 지내면 하루는 지나간다. 묽은 하늘에도 비가 오고 흐렸다 밝았다 바람이 지나간다. 그런 식으로 다들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글에서도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눈짓으로 보다 높이 선 건물에 켜진 빛을 보면서 겨우 힘을 냈는데 힘들면 이러고 다니는지 오늘도 인생을 보고 있다.


 힘들면 여기가 뭔지 세상이 뭐냐 물어보고 혼자서 곱씹고 했는데 그 습관이 여전하다. 피곤하게 흘러가는 시간에도 일상이 있고 반복이 있고 챙겨야할 것들은 있다. 그렇게 지나가면서 나는 소중한 것을 얻기도 하고 지나가다가 본 것에 반해서 서 있기도 하고 멋진 야경도 가끔 보고한다. 그러다가 몇 번 망하기도 하고 끙끙대기도 하게 된다. 이렇게 흘러가다 도착한 곳에 뭐가 있을지 좀 궁금했는데 몸도 아프고 피곤할 때는 이렇게 가다 어디에 가닿나하고 먹먹한 기분으로 한숨을 푹푹 쉬며 하늘만 올려다 보는 것이다.


 엊그제는 누워서 책을 보다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하다가 오늘은 죽겠다고 울상으로 집에 돌아오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저 곳은 왜 푸른가, 하고 생각하고. 푸르기만 한 곳이 있으면 했는데 그건 다시 아닌 것도 같고. 그렇게 지나오다가 절망해도 시간이 흘러가서 나는 연습실에서 돌아와 집에 있다.


나는 늘 내가 보려 한 곳에 가고자 한다. 그런데 흘러가다 그 곳에 못가면 어쩔까 싶다. 연습실에 가서 주섬주섬 악기를 내려두고 하나씩 꺼내서 앉아 악보를 펼치는 순간을 꽤 좋아했는데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충 맨날 하던 생각인데 오늘은 잠 못 잔 상태로 가서 혼자서 좀 심각하게 있다 돌아왔다. 가자. 가보자. 어디로 갈까. 하고 좋아하는 곳을 골랐는데 거기가 갈 수 있는 곳인지 없는 곳인지 모르겠어서 앉아서 악기도 만지고 연습도 심각하게 하다가 돌아왔다.


 절망하는 일이 두렵다. 그리고 절망해도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 가다가 여기저기 부딪히고 쓸리다 큰 바다로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잖아. 그렇게 생각해도 솔직히 심각할 때는 심각해진다. 그리고 나는 저녁을 먹고 이렇게 글을 쓰다가 한 숨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느릿느릿 하루를 준비하는 거다. 그렇게 일어난 시간이 다시 밤이 되고. 끝도 없이 이어지고 지나가고. 그러다 악기 소리도 만나고 책도 보고 친구도 보고.


 지나가다가 본 것들이 내게 중요한 것이 되기도 하고 바라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 쪽으로 걸어가는 거지.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지금 많이 졸리다. 오늘은 잘 수 있기를 바라는데 잘 모르겠다. 요즘 잠이 안와서 고생인데 이것도 좀 지나가면 좋겠다. 가끔 비도 오고 저녁에는 어두워지기도 하는데 대체로 푸른 하늘은 저기 있고 그걸 올려다 보는 나는 여기 있다. 저 곳은 왜 늘 푸른가, 했는데 생각해보면 저 하늘도 비도 오고 해도 뜨고 달도 뜨는 걸 보니 흐르는 중인가 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다. 느리게 흐르길 바라야 하나 아니면 얼른 지나가길 바라야 할까. 순간 순간 본 것들을 눈에 다 담고 귀에도 모아서 담고 싶었는데 욕심이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모아진 것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렇게 남은 것들을 손에 꼭 쥐자.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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