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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도 Sep 17. 2023

겨울이었다(4)



 나는 지금 내 손 안의 작은 화면을 보고 있다. 그곳엔 내가늘 꿈꾸던 찬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내 손엔 먼지로 더럽혀진 장갑 한쌍이 끼워져 있다. 그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어린 시절의 내 꿈을 무참히 짓밟은 지금의 시간이 원망스럽다.

 화면 속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있을 때 나는 밥 한 끼에 고작 몇천 원을 아까워하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저렴한 식당에 걸어가 홀로 굶주린 저녁을 대충 때운다. 특별히 잘난 것 하나 없는 내 저주받은 몸뚱이는 매일 의미 없는 부지런함을 무기로 삼아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버스 안에서 나는 또 작은 화면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하루가 또 시작된다.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모든 것이 나를 짓눌렀고, 사무치게 외롭고, 쓸쓸했다. 신념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그 벽을 넘어갈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았다.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 버리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너무 비참할 뿐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정말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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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희망은 빛으로, 절망은 어둠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때가 있다. 빛은 분명 어둠 속에서 더 돋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밝은 빛이 존재할지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과 같이 깊은 어둠 속에선 우린 그 빛을 볼 수 없다. 그 어둠의 끝에 빛이 있음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칠흑 같은 절망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갈 힘을 빼앗기고 있을 뿐이다.

 

 한 때 나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이 작은 방이 이제는 내 가슴과 목을 서서히 옥죄어 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가 거리를 무작정 걷다 보면 나를 꽉 누르는 압박감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러다 마음이 진정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적당히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자리에 앉아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질투가 났다. 그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는 연인이 있었다. 돌아갈 수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또 지금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가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열정 가득한 젊음이 질투 났고, 황혼의 여유도 부러웠다. 지금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게 너무 싫었다. 나는 또 비참함을 느끼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또 무엇에 홀린 듯 무작정 몇 시간을 목적지 없이 떠돌다 번뜩 정신을 차리면 정말 알 수 없는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기도 했다. 핸드폰과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오는 날이면 다시 몇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참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길은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드디어 나에게도 목적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할 이유를 계속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깊고 깊은 어둠 속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빛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둠이 나를 완전히 삼키기 위해 쫓아오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작정 앞으로 발을 내밀어야 했다. 내 발에 걸려 수도 없이 넘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지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대로 무너질까 봐 무서웠다.


나는 정말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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