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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un 07. 2023

비 내리는 휴일

5월 27일은 법정공휴일이었다. 그날은 오후 두 시에 일어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휴일이 아니었다면 학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시간이었다.

잠이 깬 뒤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밤사이 발치에 놓여 있던 윤성희 작가의 단편집을 읽었다. 수록된 소설의 배경은 새해 첫날이었다. 주인공은 친척이 수감된 교도소로 면회를 가고 있었다.

화소가 연달아 쏟아지는 이야기를 읽다가 허기가 졌다. 돼지국밥을 먹고 싶었다. 집에서 도보 삼 분 거리에 있는 국밥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휴일에도 영업을 하는지 알아보려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켰다. 국밥집 정보에는 영업시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없었다. 다른 식당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도를 확대했다. 국밥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수제버거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영업 중이었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공휴일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교도소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다. 그는 하릴없이 교도소 부근 식당에서 혼자 순두부를 먹는다. 소설 속에서는 눈이 많이 내린다.

초록색 버킷 해트를 눌러쓴 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나무들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풀냄새가 났다. 비에 젖은 풀들은 마른날보다 색이 짙었다.

걷는 동안 샌들 틈으로 빗물이 튀어 들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발가락이 약간 축축했다.

홀은 한산했다. 동네에서 보기 드물게 화이트 톤으로 실내를 장식한 식당이었다. 불에 구운 고기 냄새와 기름 냄새가 났다. 창가 쪽 테이블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부모로 구성된 3인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세트에 포함된 음료로 닥터페퍼를 골랐다. 취급하는 곳이 드물어 기회가 될 때마다 사서 마시고는 했다.

학원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3개월이 지났다. 그간에 나는 돈을 쓸 때의 마음가짐이 변했다. 늦은 밤 편의점에서 산 군것질거리를 먹을 때에도 아이들을 가르쳐서 번 돈으로 요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전보다 큰 만족감을 느꼈다.

얼음컵에 옮겨 담은 닥터페퍼를 들이켰다.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캔으로 마실 때보다 맛이 덜했다.

버거가 나오기 전에 손을 씻으려 화장실에 갔다. 변기 위에 놓인 코코도르 디퓨저에서  향이 났다. 세면대 위에 있는 핸드워시로 손을 씻었다.

버거 맛은 무난했다. 테이블에 타바스코 소스가 있어서 감자튀김에 뿌려 먹었다. 그렇게 먹은 건 처음이었다. 꽤 마음에 들었다. 타바스코 감자튀김을 은유로 써서 소소한 일탈 혹은 신구의 조화 따위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버거를 먹고 나서 종업원에게 가게가 언제 오픈됐느냐고 물었다. 작년 4월이라고 했다.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집 근처 골목에는 십 년 동안 숱한 가게들이 망하고 또 생겨났다. 식사를 하는 동안 바닥에 놓인 구 형태 스피커에서 라우브의 노래가 두 곡 나왔다. 나는 이 가게가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기를 바랐다.

식당까지 걸어오는 동안 빗물로 젖었던 발가락이 에어컨 바람을 맞고 보송해졌다. 나는 나보다 늦게 식당을 찾은 젊은 남녀가 버거를 다 먹고 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글을 썼다. 통유리로 된 가게 벽면 너머로 우산을 쓴 남자들이 줄지어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려 식당을 나섰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발가락이 다시 젖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휴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모두가 비를 맞는 나무들처럼 지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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