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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쓱 Sep 22. 2023

나는 30대 장수생이었습니다.

1화. 32살 백수가 되었다.

- 이 이야기는 실패로 버무려진 30대 백수의 밑바닥을 탈출하기 위한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 @develop_hada


 공허했다. 나의 피 같은 27살~32살의 시간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앞의 긴 여정이 있었으나 내가 아닌 남들이 봤을 때 나는 그냥 30대 백수로 보일뿐이다. 그렇게 난 장수생이었다가 30대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독서실 짐정리를 하는데 독서실 총무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 독서실 회비 결제할 때만 말을 걸었던 사람이 나에게"어?! 이번에 합격하셨나 봐요! 짐 빼시네요?!"이렇게 말을 해왔다. 나는 순간 열이 머리까지 뻗쳤으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그냥 말 길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예."하고 짐을 들고 나왔다. 순간 솔직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그까짓 자존심이 뭐라고 솔직하지 못하게 대답을 하냐.'


 짐을 들고 내 방에 다 쌓아봤다.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이 내 어깨까지 올라왔다. 참고로 내 키는 178cm이다. 참 원래 이런 건 합격한 사람들이 기념으로 사진으로 찍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냥 독서실에 버리기 아까워서 집에 다 들고 왔다. 쌓인 책들을 보니 '내가 이렇게 공부했었구나.'싶었다. 책을 보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이 책들을 다 공부하는 시간이 다 없어진다는 거에서 우울해졌나 보다. 그래도 나도 사진을 찍을까 고민했지만 그냥 찍지 않았다. 괜히 이 책들을 보면 또 그 시간들이 생각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대충 분류하고 얼마 전에 '소방관'을 준비한다는 사촌동생의 소식을 들어서 문제집 중에서 필요할 법한 것들을 빼놓고 버릴 건 버리고 남겨둘 건 책장 한편에 나 두었다. 나만이라도 그때의 시간을 생각하기 위해서. 그렇게 백수가 되고 나니 무얼 해야 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내가 수년동안 노력했던 목표가 없어지니 갈 곳 잃은 오리신세가 돼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뭔지,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암기했던 한국사나 국어, 소방법이 전부였다.

 한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아니 내 방에서 나가지도 않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만 봤다. 물론,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공시생, 공무원, 강사, 쓴소리로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친 시험풀이영상도 보고 한 번 풀이해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도 공시생마음이 남아있나 보다. 유튜브를 하루종일 보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관련해서 부업, 창업관련한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이렇게 백수가 된 나는 하루하루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먹는 양을 늘려갔다. 그리곤 누워서 유튜브보기를 반복했다. 자연스레 체중을 불어났고 점점 내 모습은 둥글해져 갔다. 그리고 번아웃과 무기력증이라는 애들이 나를 찾아왔다. 앞으로 뭘 해야 될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에 그 애들은 쉽게 나에게 찾아왔고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점점 매트리스 안으로 파고들어 가 지하로 내려가는 듯했다.


 그게 22년 4월,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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