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 빛

by 안준영

안준영_Halo 1 _ 종이 위에 잉크와 색연필_42.0 x 30.0cm_2023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지요, 사모님.’ - 권여선 <하늘 높이 아름답게> 中


1993년. 어느 계절이었을까? 2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던 시기에 문득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찾아왔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파트만 보였던 신도시의 평범한 날들, 오후 6시에 방영되던 피구만화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기. 나를 포함한 또래들은 아파트 주차장 공터에 모여 저마다 피구공 위에 조악하게 인쇄된 불꽃그림 위에 손가락을 늘려 맞춘 채 공을 던져댔었고, 훗날 문화대통령이라 불리게 되는 가수의 노래가 거리에서 들려왔으며 아파트 옆으로는 건널 수 없는 검은 강 같은 8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흐르던 시절.

그날도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의 저녁이었다. 잠들기 전 불 켜진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일순간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와 그런 자신을 인식하는 ‘나’가 분리됨을 느꼈다. 이사와 전학에 따른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원인이었을까? 혹은 성장기에 나타난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일까?

짧지만 강렬한 유년기의 기억은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새겨놓았고, 그 답은 쉽게 구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계절마다 고개를 들어 기억의 가장자리마다 흔적을 남겨놓았다. 강한 기억은 쉽게 다른 기억과 연결되고 판단을 강제하며 내 삶을 조종했으며 그렇게 쌓인 대체할 수 없는 시간들은 결국 ‘나’라는 존재가 되었다.

대체할 수 없는 시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레이는 얼마나 행복한 주인공인가. 자고 일어나면 리셋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이 상실했던 인간성을 복원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니... 뜨거운 태양과 시린 바람을 마주하며 몸은 살아있음을 느낀 것과 다르게 나에게 일상이라는 것은 기억의 손바닥 위에서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과거라는 이름으로 수납하는 일의 반복이 되어버렸다.

간절히 사라지길 바라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의 경험, 생각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기억, 나에게 일방적으로 사라짐을 통보하는 순간들 - 나는 어느 계절 속에 머무른 채 사라질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을까.

1.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中

밤새 꿈속에서 잠수부라도 되었던 걸까.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것처럼 두통은 남아있고 숨은 편하게 쉬어지지 않았다. 필요이상으로 창밖의 풍경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햇빛, 매미들의 울음소리 한여름의 피곤한 아침이었다.

40대에 맞이하는 여름날은 마치 징벌 같다. 밤새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하루 온종일 비가 내리는가 하면, 바로 다음날 지난 숱한 기록을 경신하는 더위가 찾아오는 변화무쌍한 날들 속에 지쳐가는 몸을 보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지나가버린 20대와 30대의 시간, 그리고 그 시절의 건강하지 못했던 습관들로 쌓인 청구서를 강렬한 태양 아래 들이미는 것만 같았다.

으레 그러하듯이 지쳐가는 몸에는 짜증이 깃들기 마련이다. 감각기관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무뎌지기 마련일진대 베란다 창문을 닫고 크리센트까지 걸어 잠가도 귀를 뚫고 들어오는 매미소리를 참기 힘든 날이었다. 크기를 제어할 수 없는 소음이 주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갑자기 찾아온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 순간을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눈을 감고 흐르는 땀의 감각을 따라가던 그때, 귀를 가득 메운 매미소리 속에서 새소리가 섞여 들더니 다른 소리들을 잡아먹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새들이 무리 지어 매미들을 사냥하듯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검은색 대문의 구축 양옥의 이미지. 박공지붕 바로 아래 있던 창문에서 새어 나오던 피아노소리, 코끝을 스치는 시린 바람.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던 7-8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나무-

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증상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삶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휩쓸려간다는 감각을 느낀 몇 년 전부터 불안이 마음속에 싹틀 때면 한겨울 메마른 나무를 점령한 참새떼를 상상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는 귀와 코를 자극하는 예상치 못한 감각들..

수박씨를 먹으면 뱃속에서 수박이 자란다는 이야기를 믿던 나이였다. 유행하던 전대물의 조악한 가면을 쓰면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힘이라도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여름날의 햇빛은 뜨거웠지만 길어진 낮 때문에 뛰어놀 시간이 많아져 그저 행복했고 한겨울의 한파는 무릎까지 쌓인 하얀 눈이 주는 즐거움을 이길 수 없었다. 계절과 계절 사이, 네 가족이 사는 빌라 뒷동산의 아카시아꽃 향기는 대체할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을 새겨놓았다.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굵은 선을 남기는 그런 시절.

불란서 주택. 동네 큰 사거리 귀퉁이에 있었던 오래된 2층 양옥집. 검은색 철제대문은 어린아이가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8 자 모양의 지붕 아래 있던 생전 처음 보는 동그란 모양의 창문. 그 창문에서는 지나갈 때마다 피아노 소리가 났다. 2층 테라스와 1층 발코니에서 유려한 곡선을 뽐내는 담, 그리고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정원까지. 그리고 그 정원에는 높은 담을 넘어서도 위용을 과시하는 나무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선연한, 어느 겨울 등굣길에 보았던 정원수 가지에 가득 앉아있던 새떼, 새떼들.

-왜 애써 증상의 형태로 만들어서라도 붙잡아두려 하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왜 하필 그 집에 관련된 기억이 생생한 감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나를 당장이라도 과거로 소환시켜 줄 수 있는 강렬한 기억은 수없이 많은데 따뜻함으로 간직한 유년기의 기억이 왜 불안의 감정과 맞닿아 소환되는 것일까? 그 어느 때 보다도 가능성으로 반짝거리던 내 삶의 순간들이…

“헬터스켈터... 헬터스켈터...”

그 언젠가 전시제목으로 써볼까 했지만,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던 팝송의 제목을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 소리가 방안에 가득 찬 매미소리와 잘 어울렸다.

2. ‘그녀는 어떤 희망에 그토록 교묘하게 회유당했을까. 가정의 평화. 아들들의 출세. 딸의 행복한 결혼. 오순도순한 노부부의 말년. 종내에는 무릎을 무너뜨려 계단조차 오르내릴 수 없게 만든 삶을 그녀는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中

8시 40분. 기차는 10시 20분에 도착 예정이다. 출근시간의 교통체증은 얼추 피했지만 그래도 용산역까지는 넉넉잡아 30분은 걸리기에 기차보다 먼저 플랫폼에 도착할 시간을 생각해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오늘 하루는 운전만 하고 다닐 예정이라 늘 입던 트레이닝복에 대충 다리를 꿰어 넣었다. 9년 전쯤에는 비트(Beat) 세대 같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항상 단정히 옷을 차려입고는 했지만 지난 몇 년간 나를 휩쓸고 간 삶의 흐름은 단정한 옷차림을 챙기는 일조차 가끔 사치로 느껴지게 했다.

한여름의 태양은 이른 오전에도 기세등등했고, 자동차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지만 섭씨 36도를 상회하는 폭염 속에서 햇빛이 닿는 피부까지 지켜주지는 못했다. 찬바람이 나오는지 확인하며 손바닥을 송풍구에 올리길 여러 번, 차는 대방역을 지나 여의도에 진입하고 있었지만 이미 내 마음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조금 뒤 걸어야 할 남대문시장 한복판에 있었다.

‘꼭 이렇게 더운 날에..’

이번 물건은 꼭 본인이 사입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엄마에게서 서울방문을 통보받은 것은 1주일 전 새벽. 내가 보고 골라야지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물건 고를 수 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거 지금 없어서 못 판다. 니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전화로만 주문하면 그 사람들 안 팔리는 물건만 보낸다. 내가 가야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나도 너 바쁜데 시간 뺏는 거 같아 가기 싫다.

걱정과 걱정이 맞물린 통화는 이내 오해가 되고 작은 다툼으로 이어져 현재와 관계없는 원망 섞인 푸념으로 끝내 인사도 없이 감정만 남긴 채 끊어졌다.

“왠 몽골남자들 대여섯 명 데리고 오더니 반나절 만에 그 많던 물건을 다 빼더라”

“기분이... 이상해..”

인생의 절반이 담겨 있던 물류창고와 그 세월만큼의 먼지가 쌓여있던 가구들을 정리하던 날 그녀는 나와의 통화에서 전에 들어본 적 없던 상실감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오래된 창고 안에 박제되어 있던 30년의 젊음이 한 번에 빠져나간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남대문을 찾는 모습을 보며 그녀 삶의 무엇이 지난 세월의 노동으로 무너진 몸을 움직이게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효대교를 지나 찾는 사람 없는 낡아버린 전자상가들을 지나면서 나에게 조급합으로 다가왔던 기억을 떠올린다. 오래된 살냄새,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오래된 체취를 본가에서 느꼈던 날.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 조급함을 느꼈던.. 나는 애도라는 행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기억들을 끌어안고 머릿속에서 반복하는 스스로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오가는 기차역의 대합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무표정으로 모여서 뉴스를 보고 있는 노인들, 방금 막 만났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걷는 연인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걸어 다니는 비둘기. 티켓을 통해 열차가 도착할 승강장을 확인하고 열차번호가 가까운 에스컬레이터를 찾는다. 서둘러내려 가는 내 옆으로 서로 손을 꼭 잡고 지나가는 젊은 연인들이 지나갔고 그 싱그러움에 오래된 손의 감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익숙한 대형마트나 새벽배송 같은 것들이 십수 년 미래의 일일 때 재래시장 한가운데 있던 천냥백화점에서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반짝이던 그녀의 눈빛이 떠오른다. 이미 미싱을 돌리는 일에 길들여진 거친 손이었지만 알 수 없는 일본어가 쓰여있던 각종 주방용품과 생활용품을 보는 그녀의 손은 왠지 모를 생기가 느껴졌었다. 그리고 40여 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도 그 생기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그녀의 몸과 다리는 바쁘게 돌아다니는 인파의 흐름을 깨는 엇박자가 되어버렸고 이제 그 시간만큼 야위어진 손을 아들에게 맡긴 채 자신의 집처럼 드나들었던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리를 옮긴다.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열차가 들어온다. 분주하게 내리는 사람들 속에서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이며 15호차 쪽으로 향한다. 이내 그녀를 발견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던 나는 2-3미터 앞에서 다른 사람임을 깨닫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하늘색 리넨 재킷과 베이지색 니트, 그리고 어두운 갈색의 모직바지, 아이보리색 로퍼, 두꺼운 뿔테 안경과 귀밑까지 내려온 적당히 풀린 파마머리.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옛날 생각에 잠겼던 걸까. 내가 착각하고 다가갔던 모습은 정확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20년 전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멈춰있는 내 옆을 지나 인파의 흐름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갑자기 겹쳐지는 생생한 경험에 당황해하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과거의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가 기차에서 힘겹게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통화에서 생겨난 아들에 대한 풀리지 않는 서운함과 이른 아침부터의 귀경이 주는 고단함으로 인해 짜증으로 물든 낯빛, 단차 높은 KTX의 출입계단조차 하나의 도전인 불편한 다리와 함께, 20년 전의 시간을 방금 전 아들 옆으로 영원히 날려 보낸 모습으로.


작가의 이전글201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