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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Jan 21. 2023

마스크

쓰는 것과 벗는 것, 어떤 게 더 불편한가?





 이 달 30일부터 대중교통, 복지시설, 의료기관을 제외한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바뀐다. 3년, 코로나 종식을 외치며 전 국민이 똘똘 뭉쳤다.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노쇠한 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나 살자고 우리는 그 답답한 마스크를 하루종일 쓰고 살았다. 세계를 놀라게 한 K-방역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지와 시민의식이 만들어 낸 성과였다. 하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그렇게 마스크를 싫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마스크 벗기를 두려워한다. 공원에서 킥보드를 탈 때도 마스크를 벗으려 하지 않는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마스크는 얼굴에 입는 작은 옷이 돼버린 듯하다. 마스크 없이 분리수거라도 하러 나가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려가는 숫자를 보며 작은 스릴을 느낀다. 다른 층에서 멈추기라도 하면 심장이 덜컹다. 마치 팬티차림으로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벽 쪽으로 돌린다.


 이제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보는 대신 마스크를 본다. 마스크에 가려진 무표정한 눈동자는 왠지 모를 공포심을 유발한다. 그래서 마스크를 보는 게 편하다. 꼭 마스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그 어느 때 보다 커졌다. 그런데 이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마스크를 벗어던질까? 아니면 여전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닐까?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까?


 마스크를 2년 넘게 쓰고 다녔더니 귓바퀴가 레슬링 선수처럼 단단해졌다. 이제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걸고 다녀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간보다 턱에 걸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실외 마스크 착용이 자율이 됐는데도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나는 왜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걸까? INFJ라서 그런 걸까? ENFJ인 와이프는 밖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마스크를 턱에 걸고 밥을 먹을 때도 있다. 불편함은 없다. 안경을 쓰고 밥을 먹는 것, 모자를 쓰고 밥을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 아직 의무라고는 하지만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마스크를 계속하고 다녔다. 딱히 준법정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대신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마스크를 내려서 턱에 걸었다. '턱스크'라는 말이 생긴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은 아닌가 보다 싶어 안심이 됐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는 게 오히려 불편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해졌다. 마스크를 내리기 싫어진 것은 오래된 주민등록증 사진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것과 같은 이유일까? '마기꾼'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걸까? 마스크를 쓰던 안 쓰던 내 외모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하고 있지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평생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살았는데 단 3년의 습관이 우리 머릿속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마스크는 이슬람의 히잡 문화와 닮은 면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강제당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착용하지 않을 권리와 착용할 권리를 모두 보장받고 싶어 한다. 마스크 착용이 전면 해제 된다고 해도 여전히 미세먼지와 세균 등의 이유로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자유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마스크 자율화가 웹상에서 만연해 있는 편 가르기 혐오 문화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마스크파 vs 반마스크파'의 대립구도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휩쓸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 감정을 소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사무실에서 거북한 음식냄새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음식을 시켜 먹은 거야', '사무실 안에서 밥을 시켜 먹었으면 환기를 좀 시키는 게 예의 아닌가' 하고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30분이 지나도 전혀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 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료직원을 발견하고는 마스크를 내리고 다가갔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잠깐 노닥거리고 나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턱스크' 상태로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음식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 사이 환기를 시켰나' 하고 창문을 둘러보 마스크를 다시 썼다. 아까 나를 불하게 만들었던 그 냄새가 다시 났다.


  내 마스크는 세상과 나를 분리하는 도구였다. 마스크를 벗어던졌을 때 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코로나 초기에 약국에 마스크 5장을 사려고 30분을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것은 마스크가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 가족의 안전이었다. 그토록 마스크가 귀한 시절에도 우리는 지인들에게 마스크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물었다. 무더운 여름에 현장에서 땀에 젖은 마스크를 쓰고 숨 막히는 고통을 참아냈던 것도 내 생활 터전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PCR검사병원에서도, 답답하고 좁은 복도에서 30분씩 줄지어 기다리면서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귀를 때릴 때도 사람들은 아이들을 걱정했다. 코로나 감염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대구에서는 통장 아주머니들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마스크를 나눠줬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종교 단체라는 가짜 뉴스가 돌았지만 따뜻한 진실은 금방 세상에 드러났다.


 야심 차게 자영업을 개시하고 코로나를 맞이한 자영업자들은 힘든 시간을 겪었다. 빚을 떠안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도 있고, 잘 버텨서 기반을 마련한 자영업자도 있다. 집값 상승으로 재산을 불린 사람도 있는 반면에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사람도 있다. 용감하게 투자해서 주식으로 재산으로 두 배 세배 불린 사람도 있고 높은 층에 물려 아직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노쇠한 부모님이 코로나에 감염돼서 돌아가셨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화장한 유골단지를 전해받아야 했다. 지난 명절에도 코로나 때문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그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사람 편 가르는 법은 누가 안 가르쳐줘도 다들 그냥 알아요. 꼭... 엄마 뱃속에서 배워 나오는 거 같아..."

웹툰 '송곳'에 나오는 대사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락을 모두 겪으면서 상승론과 하락론이 대립했다. 한쪽은 집이 없는 설움을 조롱했고, 한쪽은 가진 자의 재산이 반토막 나길 기도했다. '게임스탑'과 같은 밈스탁이 급상승하면서 전통투자자와 밈투자자의 대립도 있었다. 전통투자자들은 밈투자자들의 수익률 자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밈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의 손실을 기뻐했다. 백신의 부작용과 효용을 두고 집단면역론과 백신무용론이 갑론을박을 펼치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우리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휩쓸려 다녔다. 이런 분위기라면 마스크 대립도 분명히 생기지 않을까? 마스크 자율화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겁쟁이" 혹은 "무지성"이라는 꼬리표를, 마스크를 벗은 사람에게는 "세균맨", "무슨 용기로" 같은 꼬리표를 붙여서 서로를 경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결국 우리 모두 다 코로나 3년 동안 힘든 시간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 역시 힘든 시간을 겪어 왔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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