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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Jul 02. 2024

금식 9일째

1976년 3월 9일

태양은 벌써 떠오를 시간인데 날씨가 흐린 탓에 안갯속에 숨어버렸다. 안개가 밀려날 때까지 참아야겠지. 지난밤에는 다시 불을 때는 방으로 옮긴 덕분에 잠을 달게 잘 수 있었다. 꿈도 꾸었다. 금식 9일째가 시작되는 날이다. 적어도 "먹는 문제는 자유를 얻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꿈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떡과 빵을 탐스럽게 먹고 있으니 아직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지? 비록 그럴지라도 약간의 소금과 물 외에는 일절 먹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오늘이 9일째가 되는 날이다. 또 다른 꿈은 어린아이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아이들이 내게 돌을 던진다. 나도 돌을 주워 아이들에게 던진다. 좀처럼 그치지 않는 싸움은 서로가 머리가 돌에 맞아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고 나서야 그쳤다. 싸운 이유는 모르겠다. 싸움이란 서로 같으니까 싸우는 게 아닌가? 한쪽이 양보하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왜 싸우는가?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욕심이라는 걸림돌이 있다. 어른들은 욕심으로 인해 싸운다. 어제의 우정도 멀어지며 갈라서기도 한다. 어떤 세속적인 욕심이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토요일에 하산하겠다던 <춘>이라는 청년이 돌연 오늘 집으로 가겠다고 하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정신수련을 위해 이곳에 장기간 머무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순진하기 그지없는 시골 청년이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원장이나 일하는 아주머니도 청년이 가는데 문도 열지 않는 것을 보고 짐작할 뿐이다. 청년은 날마다 아궁이에 땔 나무를 해다 놓으려고 많은 수고를 했다. 누가 이 일을 대신할 수 있을는지 걱정스럽다.



1976년 3월 10일


오늘은 수요일. 월요일에 올라온 O 씨가 토요일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오늘 내려가라고 권고했다. 막상 돌려보내며 인사를 주고받을 때는 둘 다 똑같이 고개를 돌리며 글썽이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흘리는 눈물은 그리움으로 쌓이는 것이라면 뒤돌아보며 어느새 손수건으로 닦는 O 씨의 눈물은 그 의미가 무엇일까. 혹시라도 움푹 파인 나의 반쪽이 된 얼굴을 바라보는 측은함 때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0일째 금식이지만 두 다리에 힘이 생겨 마음대로 걸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누우려는 유혹울 떨쳐버리고 일어나 걷자.                                  



1976년 3월 11일 


어젯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흙바닥 위의 방은 차가웠다.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따스한 햇볕이 기다려진다. 오늘따라 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있다. 우울한 하루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가진 게 없어서 맑은 물로 주린 배를 채우고 흙냄새를 간식 삼아 달랜다면 불쌍하기 그지없는 나약한 존재감을 갖고 신음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 나를 쳐서 깨뜨리는 영적인 훈련 기간으로 짜인 틀 속에서 진행 중이다. 정말 집이 없어 원시인처럼 토굴을 파고 그 안에서 지내고 있다면 얼마나 가난의 아픔을 서러워할까. 오늘이라도 하산하면 따뜻한 방과 부드러운 이불이 감싸줄 것이 아닌가. 차가운 날씨와 싸우면서  11일째 금식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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