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수 Jul 16. 2024

어색한 정장을 하다

(1976년 3월 14일)

지난밤은 오랜만에 따뜻한 온돌방에서 맘껏 깊은 잠을 잤다. 전신이 힘차게 펼쳐지는 기분이다. 그저께 밤에 얼었었던 목, 어깨, 팔, 다리 전체가 새로운 힘을 얻고 새벽을 연다, 금식 14일 째다.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신선한 물 받아 양치질을 한다. 얼굴을 씻는다. 약간의 소금을 입에 머금고 물을 마신다. 그리고 가끔 물을 마시며 하루를 지낸다. 1일부터 지금까지 지키는 훈련과정이다. 마치는 40일까지 같은 일과표를 유지하게 된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다짐한다.


이곳에는 기도원과 함께 산 아래 마을에서 올라오는 신도들을 위한 신앙공동체가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기에

모여 예배 모임을 갖는다. 설교는 원장님의 담당이다. 나는 축도의 순서를 부탁받았다. 그래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메기로 하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맞던 목의 크기 95 사이즈가 넉넉하게 보인다. 목이 길어졌으며 넉넉해져 어색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원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얼굴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가족들의 보살핌이 있어서지요."


새들이 지저귀는 창가에 철쭉 나뭇가지마다 꽃봉오리가 보가 좋게 맺혀있다. 며칠이 지나면 활짝 열려 예쁜 봄 색깔을 자랑하리라 생각하니 가다리는 즐거움이 미소 짓게 한다.


늦은 오후 원이재 어른과 문여찬 어른 그리고 강이선 씨가 이곳까지 방문했다. 얼굴을 보고 손을 잡으면 반갑기 그지없지만 할 수 있으면 혼자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도 공부라고 여기기에 아무도 보내지 말라는 부탁을 아내에게 했었다. 그럼에도 만나면 무척 반갑다. 그러나 곧 글썽이는 눈빛을 서로 보여야 하기에 무거운 침묵의 커튼이 내려지는 아픔도 따른다.



금식 15일째


월요일. 

원장님이 서울 모임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출발하는 날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기도원 가족들이 모두 산 아래까지 배웅을 나갔다. 산에는 쉼을 갖기 위해 찾아온 50대 어머니 한 분이 아래 집에 머무르고 있고 나는 윗 집 창문에 걸터앉아 있으니 너무나 조용하다. 이름 모를 새들만의 합창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곳에서 추운 날씨가 제일 싫었는데 오랜만에 봄 같은 날이다. 웃옷까지 벗어젖히고 평화롭게 창가에 기대어 있으니 행복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듯하다. 산 아래 동네에 보이는 푸르고 푸른 보리밭이랑에 머리를 맞대고 풀을 뽑는 부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행복이 꽃피는 초원과도 같다. 혼자만의 행복보다는 둘이 함께 하는 행복이 더 아름답다 할 수 있으리라.

 

오후가 되면서 이상하게 몸이 무겁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조차 싫은 날이다. 무슨 까닭일까? 나도 모르겠다. 이런 날은 절대로 40일 기간에 '나 있는 곳에 올 수 없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아내가 그리워진다. 서로 떨어져 있어 봐야 그리움을 알 수 있겠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처음으로 장기간 헤어져 있으니 서로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기회가 됨을 배운다. 약속을 지키려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해 그림자가 길어질 때가 가장 그립고 외로울 때다. 얼마나 시간이 길고 더디 간다고 느껴지는 것은 하루가 그렇게 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무도 대화하는 자가 없이 한 칸 방에 하루종일 혼자 있으니 그 모습 상상만 해도 짐작을 할 수 있을게다. 모두가 자기 집을 찾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제 방을 찾아가는데 난 언제나 그리 될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걱정을 하면서 씨름하고 있으니...


그러기에 지금의 나는 모든 관심의 초점은 위로 향하는 한 마음.    

작가의 이전글 추운 방에서도 꿈은 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