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 라디오가 곁에 있다. 그렇다고 얘기를 많이 듣는 편도 아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전국이 '영하의 쌀쌀한 날씨'로 출발합니다. 궁금한 소식들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니 진실을 전달할 뿐이다. 세상에는 이 도구만도 못한 친구들이 있다. 거짓과 배반 혹은 약속을 깨뜨리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내 친구입니다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대학생 시절 함석헌 선생(1901-1989)의 강연을 들으려고 정규수업을 놓친 일이 있었다. 흰 두루마기 차림에 하얀 수염의 인상적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가 쓴 시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 석 헌 -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핳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 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생의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 사람을 찾기보다는 누군가의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1976년 3월 19일 금식 열아홉 번째의 날을 헤아리며 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