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24일.
낮에는 찬 바람이 계속 불어 방에서도 코를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오후 3시쯤 <태순> 엄마가 혼자 올라왔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이제는 오면 반갑고 고맙지만 오히려 리듬이 깨져 그냥 집에서 후원하는 편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흐르는 시간은 베틀에 놓여있는 북의 빠름보다 더 빠르게 지나고 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모습이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로부터 편지가 왔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고등학교 3학년 <경준>이가 갖고 왔다.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 편지에는 금년 여름 서해안 섬으로 여행계획을 세워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힘든 하루를 잊고 이십사 일째를 강물에 실어 보내다,
눈보라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가. 갇혀만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이름 모를 풀들이 파릇파릇 키재기를 하며 많이도 자랐다. 쑥들이 벌써 고개를 내밀어 누가 뜯어놓았는지 조그만 그릇에 담겨있는 것을 보았다. 새들이 부쩍 늘어 나무와 나무사이를 나른다. 언제 나왔는지 노랑, 검정색깔의 나비들은 춤 솜씨를 자랑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는 굴 속에서 나와 덩치 커진 강아지를 조롱하며 숨바꼭질하듯 자유롭게 뛰논다. 그런가 하면 며칠째 움츠렸던 진달래도 기어이 빨간 입술을 터뜨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저녁이 되면서 갑자기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구름으로 가려진 날씨가 되었다.
늦은 시간에 찾아온 <인선>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다. 70이 넘은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다. 내가 이곳에 올 때 딸네 집에 머물러 있었기에 너무 궁금하여 오게 됐다고 했다. 반갑게 마주 잡은 손 등에 뜨거운 눈물이 방울 되어 떨어진다. 가방에서 꺼낸 봉투는 아내가 쓴 편지다. 아내는 절대 오지 말라는 내 말에 순종하여 올 수가 없었다. 편지로 아쉬움을 대신하기로 하다. 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내를 그리며 이십오일의 어둠과 싸우는 밤을 기다린다.
금식 26일째
지난밤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새벽에도 그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간간히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흙을 부드럽게 만진다. 아직 멈추지 않은 빗속을 헤치며 <태순>이 엄마와 <인선> 엄마가 돌아간다고 하산하다. 계속 내리던 비는 오후 4시가 돼서야 그쳤다. 여기까지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읽고 찬양하며 명상으로 가도의 창을 적어 본다. 굉장한 고역이다. 그래도 걸어가야 한다. 오늘 밤도 씨름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밤의 횡포
두꺼운 미닫이를 아무리 누르려해도 그건 너무나 가벼운 탓
하나 둘, 하나 둘 셋, 수백 장을 넘기고 괴로움의 밀어들을 찾아 헤매다가
억지로 창문을 잠그나 그래도 또 열리는 문은 도무지 바람 곁에
덜거덕 거라고 뭉클거리는 가슴속을 파고든다
나를 짓누르지 말아라
이 밤의 공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