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배움)
은퇴 시기가 2-3년 앞으로 다가왔을 때 이후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게 됐다.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양로원을 방문하여 어른들의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지역 목회자들에게 말했다. 세 명의 목회자가 참여의 뜻을 밝혔다. 목회자 부인도 둘이 함께 하기로 하다. 미용 기본을 익히기 위해 미용실 원장에게 배우기로 하다. 마침 교회에 출석하는 잡사가 원장으로 운영하는 미용실이 있어 1주일에 한 번 쉬는 날에 모여 배우기로 의견을 모았다. 원장의 권고에 따라 가발, 앞치마, 머리카락을 자르는 기계, 가위, 삼각대 등 필요한 기구들을 단체로 구입했다.
커트하는 기술부터 마무리 다듬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배웠다. 중간에 젊은 자매 한 사람이 동참하여 힘이 되기도 했다. 6개월 기간을 예상하고 모두 손에 익숙하도록 열심히 노력을 했다. 5개월쯤 됐을 때 원장인 집사가 요양원 한 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머리카락 손질에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요청이 왔는데 가자는 게 아닌가? 우리들은 아직 어렵습니다. 사양을 했다. 그러나 원장은 같이 가서 마무리는 직접 해 줄 수 있으니 도전하자고 부추긴다. 우리들은 안정된 마음으로 첫 번째 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좋은 평가도 받았다. 남자 어르신들은 옛날 중. 고등학교 학생들처럼 단정하게 짧은 머리로 다듬어 드렸다. 여자 어르신들도 커트마무리를 원장의 손에 맡기며 흐뭇해하셨다. 이에 만족하시며 다음에 또 오기를 기대했다. 계속 요청이 들어왔기에 감당할 수 없었다. 한 주에 한 기관씩 방문하기로 했다. 불가피한 경우는 팀원을 나눠 두 기관을 방문하여 봉사를 했다. 2013년은 지방 선교부에서 라오스 선교지를 방문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이발 봉사 팀은 라오스 단기 선교에 합류하기로 했다. 팀원들은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모아 생필품을 구입했다. 칫솔, 치약,비누 등을 구입하여 포장을 했다.
라오스에서는 산족 독립 부락을 방문했다. 더벅머리 학생들이 몰려왔다. 얼마나 방문하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가? 처음 치약을 나눠줬을 때 사용한 일이 없었기에 먹는 과자 종류로 오해가 있었다는 얘기다. 어린아이들이 입에 넣어 먹어보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어른들의 머리카락도 손질하여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나눔과 봉사의 즐거움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2014년 은퇴하기 전까지 요양원 봉사는 계속했다. 강화군청에 '샬롬'이라는 봉사 단체 이름, 그리고 미용실 원장을 회장으로 등록하고 규칙적으로 활동했다. 은퇴 후 강화에서 부평으로 이사를 했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내와 같이 팀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다가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사태로 일시 중단 하기로 의견을 모으다.
자원봉사로 요양원 방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일상적인 이야기다. 누구나 늙음이 있음이다. 할머니들만 몇 분 계신 곳을 찾았을 때 곱게 늙으신 지적인 팔십 넘으신 분의 머리를 다듬는 기회가 주어졌다. 회색 빛이 약간 비취면서 하얀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웨이브 한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시력이 약해져서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요양원 원장의 얘기를 들은즉 이 분은 서울 모 대학 메이 퀸 출신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음미하니 그럴만한 품위가 몸에 배였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세월의 화려했던 5월의 꽃을 시들하게 변화시켰다는 미움의 시간들을 지우고 싶을 뿐이다. 젊음의 때는 화도 초등학교 마당에서 마니산 정상 참성단을 밟고 돌아서서 달려 내려오면 왕복 80분이면 충분했다. 어쩜 지금은 동화 같은 얘기처럼 아쉬움을 안고 지나가는 구름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죽음. 차례를 정해서 요양원을 뱅문하게 됨은 순리다. 그래야 서로 편하다. 다른 게 아니다. 다음 방문할 때 지난번 뵙던 분이 오늘은 얼굴을 볼 수 없다는 허전함이다. 요양원. 기다림의 정류장이라고 할까? 나에게 세 분
형님이 계셨다. 한 분씩 요양원에 머물다가 이어지는 베틀의 날실을 가위가 잘랐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와 같이 존엄사가 용납된다면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서로의 갈등을 피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히브리서 9:27).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가야만 하겠다. 살아있으니 감사하고 더구나 노년은 살아온 날 보다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깝기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100 가지를 적어 놓고 지워 나가기보다 그냥 숨을 쉬며 새벽을 연다면 하루를 감사와 즐거움으로 지내는 삶이 되게 하는 지혜를 가져보자. 여기에는 공동체의 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