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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02. 2021

나를 성장시킨 사람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히 쓰려고 많은 애를 썼었다. 우선 쓰는 것만으로 얻는 즐거움이 있었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고 넓어지는 것이 느껴졌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 몰라도, 잘 썼다 칭찬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과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문자로 펼쳐놓고 나면, 스스로 세상에 대한 공부를 깨우친 것처럼 뿌듯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나름 사고의 영역을 넓혀 세상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도 우물 속에서 겨우 한 걸음 뗀 정도이기도 했다. 세상엔 너무나도 다양한 삶이 존재했고 나는 그것을 다 이해하기에 너무나 작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며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 늦은 나이란 없겠지만 느지막이 그렇게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나를 모르던 세상으로 이끌어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작가님들도 있고,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던 친구도 있고,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이 내게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나에게 기획이란 무엇이며, 새로운 영역으로 사고를 이끌어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한 동생이 가장 인상 깊게 떠올랐다.


몇 년 전, 바로 이 브런치에서 함께 연재를 했던 동생이 있다. 나는 한 번도 발디뎌 본 적 없는 큰 회사에서 멋진 커리어를 가졌던 동생, 그러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삶과 착취하듯 에너지를 뺏어가는 회사에 지쳐 훌쩍 독일로 떠난 그런 멋진 친구였다.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것이 많았다. 더 넓은 세상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 덕분에 나는 바라볼 수 없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꾸준히 글을 써보고 싶었고 그녀는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해서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 무엇을 쓸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들을 끄집어 내게 되었다. 그 대화에 살을 붙이고 나의 생각을 덧붙여 글을 썼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누구나 겪어보았을 법한 소재의 이야기들을 글로 만들다 보니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다.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생기고 그녀의 그림을 기다리는 독자가 생겨났다.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생기자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고, 그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은 세상을 읽어내려 애썼다. 세상엔 쓸 것이 넘쳐났다. 누구의 삶도, 아주 사소한 일도, 모두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글의 인기를 떠나 내가 세상을 점점 다르게 보게 되었다는 것과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공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비록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단되어버렸지만 나는 그때의 글을 무척이나 아끼며 다시 꺼내 읽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형편없는 문장의 글일지 몰라도, 그 글들은 내 성장의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수업의 형태가 변하고, 사람들 간의 소통 수단 역시 변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 사회관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배움이 꼭 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인가? 쌍방이 아닌 일방적인 배움도 가능하지 않은가? 일 역시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들이 화두로 던져지고 있다. 지식을 얻는 것은 일방적인 정보에서 얻을 수 있겠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무언의 지지 속에서,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잘 섞였을 때 나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다시 백일 간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오래전 글을 꺼내 읽었다. 그때의 글이 지금의 글보다 좋은지 나쁜지, 나는 얼마나 더 잘 쓰게 되었는지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 글을 읽으면서 동생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세상만사 다양한 삶의 군상을 끄집어 내 이야기하고, 웃고, 울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웃고 싶다.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알게 모르게 지나쳤던 많은 사람들의 말과 웃음 속에서 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오늘 만난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해본다. 그 말들이 글이 되어 꽃이 피고,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줄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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