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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30. 2020

책과 귤

제주에선 귤 사 먹으면 친구가 없다는 속설이 있다. 다행히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지 작년에도 올해도 귤 풍년이다. 여기서는 “귤 좀 가져왔어”라고 하면 컨테이너 박스로 한 가득이다. 너무 귤이 많아 손님들에게 듬뿍 드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척박하여 부족한 게 많지만 그래도 귤만큼은 넘치도록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귤 농사를 짓는 친구들 중에 몇몇은 무농약 유기농 귤을 생산하고 있다. 귤값이 많이 떨어져서 10kg 한 상자에 10000원에 판매되는 곳도 있다는데 이 친구들은 10kg에 3만 원에 판매하니 비싸게 느껴져서 더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약을 쓰지 않는 대신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고 더 좋은 비료를 주어 더 정성껏 농사를 짓는다. 그런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싼 가격을 받고 그마저도 비싸게 느껴진다며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나은 농사를 짓겠다며 좋은 고집을 부리고 있는 멋진 친구들을 보면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약을 치고 더 많이 값싸게 판매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좋은 것을 팔겠다는 마음이 꼭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에 광고를 할 수조차 없는 작은 출판사들의 좋은 책을 소개해 팔겠다는 우리의 마음과 닮아있다. 모두 다 싸고 예쁘고 편리하게 이용하기만을 바랄 때 건강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그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책에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조금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할 작은 책들에 관심을 쏟고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 어려운 농사를 짓는 것처럼 누군가는 해야 하는 보람된 일이다.


바구니에 잔뜩 담긴 귤을 먹으며 귤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손길을 생각해본다. 이 귤 하나를 따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일했을 삼춘들부터 육지의 곳곳으로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들의 손까지 어느 누구 하나도 빠뜨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귤이다. 오늘도 우리는 귤 하나하나 수확하듯 책을 진열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책 너머의 정성 어린 손길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글을 쓴 작가의 손길부터 편집자, 인쇄소, 배송 기사님, 그리고 책방 문을 열고 잘 보이는 곳에 정성껏 진열해놓은 우리의 손길까지도. 날이 무척이나 춥지만 모든 물건들 뒤에는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담겨있다. 모두에게 그 마음이 다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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