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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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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08. 2021

눈 속의 책방

이틀째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뉴스를 보니 길이 얼어붙어 버스의 승객들이 내려 버스를 밀고, 몇 시간째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차 안에 갇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자연의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때이다.

도시에 살았을 때에는 그래도 여기보다는 발 빠르게 자연재해에 대응하여 큰 불편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이번 눈은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온통 마비시킬 만큼 강한 영향을 주었지만 보통은 빠르게 제설작업이 시작되고 대중교통편도 늘어나 시민들이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대응했다. 그런데 시골은 다르다. 제설차량이 시골 마을 안까지 들어오지도 않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길마저 통제되어 꼼짝도 못 하게 된다. 여름에 태풍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자연이 그 힘을 발휘할 땐 인간은 그저 납작하게 엎드려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이틀 째 책방은 조용하다. 이 눈길을 뚫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너무 감사했다. 길도 얼고 운전하기 쉽지 않을 텐데 이 눈발을 헤치며 달려와주신 분들, 심지어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이 추위를 뚫고 와주신 분들도 있었다. 춥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날이었다. 책방을 찾아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추워도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이것이 작은 나의 사명감이다. 누가 보든 안보든 책방의 책들도 늘 관리해줘야 하고 새로운 책들도 서가에만 꽂혀있던 책들도 순환시켜 새로 생명을 불어넣어주어야 한다. 눈이 와도 여전히 할 일은 많은 것이 책방이다. 그런데 책방에 새로운 기획을 준비 중인데 여기에 필요한 것들을 주문했지만 이틀째 택배는 오지 않고 있다. 새 코너가 ‘준비 중’이라고 메모만 붙여있고 텅 비어있다. 그 빈자리를 볼 때마다 찾아주신 분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눈길에 택배가 밀리는 것쯤이야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책방의 새 코너는 다음 주 휴일에나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말을 더 비워두어도 할 수 없다. 자연 앞에 우리는 납작 엎드려야 할 때가 있고 그 험한 환경을 뚫고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조금 더 이해할 필요도 있으니 말이다. 찾아주신 손님들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더 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을 오늘은 잠시 눈 속에 덮어두고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차분하게 보내본다. 돌아가는 손님들의 길이 더 안전하길 바라며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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