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책임교사 이야기8
(월간 '좋은교사'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뜨거웠던 여름, 그리고 교육부의 고시
2023년 여름은 온 나라가 교육 이슈로 뜨거웠다. 7월 18일에 자살한 서이초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유족과 지인들의 증언이 알려지면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교육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른바 연필 사건으로 불리는 학생들 사이의 실랑이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타깝게도 증거가 남아있지 않아 경찰의 수사는 미진함을 보이고 있지만, 서이초 교사 사건은 교사의 교권침해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비슷한 시기에, 의정부호원초등학교 교사 2인 사망 사건, 유명 웹툰 작가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 소위 왕의 DNA로 회자된 교육부 사무관 갑질 사건 등이 연달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그동안 속으로만 앓아 오면 교사들의 분노가 마침내 외부로 표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7월 22일에 1차 집회를 시작으로 여름 내내 매주 토요일마다 수천에서 수만 명의 교사들이 집회로 모여들었다. ‘공교육 멈춤의 날’로 명명된 9월 4일 집회에는 교사들의 집회 참석을 불법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가운에 교육부는 교사들의 고충에 공감하는 국민 여론에 떠밀려 8월 17일에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하고 9월 1일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고시에는 그동안 정당한 교육활동마저 아동 인권 침해로 신고를 당해 온 상황을 극복하고자, ‘교육활동 방해 학생 분리’, ‘위험 물품 분리 보관 및 필요한 경우의 소지품 검사’ 등 교사들의 학생 지도 권한을 명문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교육부는 고시를 발표하면서 9월 1일 신학기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가지만 각 학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고시 내용을 반영할 것인지는 해당 학교의 교칙을 개정하는 과정을 10월 말까지 거치도록 안내하였다.
교육부의 고시를 통해 교사의 정당한 학생 지도가 보호받게 된 것은 다행이었으나, 각 학교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을 누가 분리하고 누가 지도할 것인가. 학교에서 교사의 일은 수업과 담임과 행정업무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이미 연초에 배정된 각자의 업무에 따라 할 일이 모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새롭게 학생 분리 업무를 맡을 사람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교육활동 방해 학생 분리 업무는 누가 봐도 그 부담이 만만치 않은 일이 아닌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 생활지도 전담 인력이 배치되는 게 절실히 필요하나 이번에도 교육부는 예산과 인력에 대한 지원책은 없이 각 학교에 그 책임을 떠밀었다.
학생생활규정 개정 절차
학교에는 학교 운영의 제반 사항을 문서로 정해 놓은 학교 규정이라 불리는 교칙이 있고, 그 안에는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 ‘학생생활규정’이 하위 구성요소로 들어 있다. 교칙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교칙 중에서 특히 학생생활규정은 반드시 학생, 교원, 학부모의 의견 수렴 절차를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자의 학교는 의견 수렴을 위해 학생, 학부모, 교원의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표1]에서 보듯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는 절차만으로도 일의 분량이 적지 않다. 학생, 학부모, 교사 대표가 참여하는 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교육주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실시하며,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장 결재를 거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확정된 이후에는 학생, 학부모, 교원이 개정된 학생생활규정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끔 안내하고 연수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가 필요함에도 필자는 개정 절차를 불편한 마음 없이 적극적으로 진행했는데, 그 이유는 이 개정으로 인해 학교가 한층 더 안정적인 교육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작 가장 큰 어려움은 절차에 있다기보다, 누가 실질적으로 학생 분리 업무를 담당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적 측면에 있었다.
분리 교실 담당자 지정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많은 교사들이 수업 중 정당한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으로 인해 심적 부담이 크게 느끼고 있다. 장애 판정은 받지 않았지만 정서와 행동에 다양한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이 교실에 존재하며 그 학생들이 교사의 교권이나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지도하는데 필요한 지원 체계가 학교 안에 갖추어져 있지 않고, 교사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가는 자칫 학부모의 민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교육 활동에서 위축되고 그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우울증 혹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지도 불응 학생은 교사 한 사람에게 맡겨 놓지 않고, 여러 지원 인력과 전문가가 함께 개입하여 교사를 돕고 또 해당 학생의 교육적인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당국은 그러한 고민은 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어떻게든 주어진 자원 안에서 학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지도 불응 학생에 대한 전문적인 처방이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가운데, 우선 교육활동 방해 학생을 분리하여 스트레스 상황에 있는 교사를 돕도록 한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분리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학생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계의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지도 불응 학생 분리 절차를 다음 [표2]와 같은 흐름으로 설계하였다.
교육활동 방해학생 분리 절차에서 관건이 되는 부분은 역시 3단계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 학생을 분리 교실로 이동시켜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 누가 와서 데려갈 것이며, 분리 교실은 어디로 지정하고, 누가 분리 교실에서 분리된 학생을 지도할 것인가? 필자가 전해 듣기로는 많은 학교가 이 부분에서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교 구성원 간에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활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생활부에서 일차적인 역할을 담당하되 여러 학교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계하였다. 분리 대상 학생이 발생할 경우, 교사는 배움터지킴이, 생활부교사, 전문상담사, 교감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학생을 분리 교실로 데려가도록 하고, 분리교실은 생활부실, 학년부실, 상담실, 교장실 등을 이용하도록 학교생활규정에 담았다.
누군가는 맡아야 할 상황에서 필자가 생활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생활부에서 주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는 했지만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학교마다 부서 편제나 부서 상황이 다르고, 심지어 일부 초등학교는 생활부가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누가 이 역할을 맡을 것인지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생활지도 전문 인력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
교육활동 방해학생 분리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생활지도 전문 인력의 배치이다. 생활지도 전문 인력의 배치가 필요한 이유는, 첫째,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는 교육활동 방해 학생이 있을 경우 교사의 수업 진행에 심대한 차질이 발생하고 이는 수업하는 교사에게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한다. 둘째, 교육활동 방해학생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은 심리적인 문제나 환경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서행동 위기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생을 분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문적인 교육적 처방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책임을 수업교사나 담임에게 맡겨 놓고 지원 시스템 없이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도를 교사 개인에게만 맡겨놓고 있는 현 상황의 문제성을 교육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생활지도를 전담할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데에 속히 나서야 한다.